차에서 내비가 ‘다음 출구에서 유턴’만 외침
차를 몰고 퇴근길에 고속도로를 탔는데, 내비가 딱 한 줄로만 계속 울리더라. 진짜로 “다음 출구에서 유턴”만. 멘트도 매번 똑같고, 어조도 똑같고, 내가 뭘 하든 말이 안 바뀌는 느낌이었어.
처음엔 그냥 ‘아, 내가 잘못 들어왔나’ 싶어서 다음 출구까지 버텼지. 네비가 그렇게 말하면 설마 그게 최선이겠지 싶잖아. 그런데 다음 출구가 나오고 차선을 바꾸는 순간, 내비가 또 “다음 출구에서 유턴”을 외치는 거야. 출구를 이미 지나가고 있는데도 말이야. 나는 손에 땀이 나는데 차는 아주 성실하게 앞으로만 가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진짜로 “아니, 여기 유턴하면 안 돼?” 하고 화면을 봤는데, 화면엔 분명히 길이 쭉 표시돼 있거든. 그런데 음성은 계속 같은 문장. 심지어 유턴을 할 수 있는 표지판 앞에서도, 차가 좌회전 대기하는 줄 서 있는데도 그 문장만 반복이야. ‘다음 출구에서 유턴’이란 말이 마치 주문처럼 박혀서,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똑같이 리플레이가 됐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내비 설정을 만져보기 시작했어. 볼륨을 줄여도 같은 문장이 나오고, 경로를 재탐색해도 똑같고, 음성 언어를 바꿔도 똑같고… 심지어 “안내 끄기”를 눌렀는데도, 끄는 버튼 눌림 소리만 나고 음성은 계속 나오더라. 순간 내비가 고집 센 사람처럼 느껴졌어.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화낸 건가 싶고.
그때부터는 진짜로 웃기면서도 짜증나더라. 고속도로는 출구가 한두 개가 아니잖아. 나는 출구 몇 개를 지나면서도 계속 “다음 출구에서 유턴”을 들었고, 점점 마음이 간절해졌지. 대체 다음 출구가 어디야? 내비가 말하는 ‘다음’이 내비 기준의 다음인지, 내 기준의 다음인지, 아니면 그냥 영원히 다음만 존재하는 세계인지. 괜히 철학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한번은 정말 용기 내서, 아예 유턴 가능한 구간을 찾아서 시험 삼아 꺾어봤어. 내비는 당연히 “다음 출구에서 유턴”을 계속 외쳤고, 심지어 내가 유턴을 마치고 다시 합류하려는 순간에도 똑같은 말이 나왔어. 그 순간 나는 깨달았지. 이건 내비가 길을 안내하는 게 아니라, 내 운전 습관을 관찰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유턴을 자꾸 미루니까, 내비가 “언젠가 해, 언젠가” 하는 느낌.
그러다 결국 교차로 하나에서 출구를 벗어나서 다른 도로로 들어가 버렸거든. GPS가 다시 잡히면서 화면에는 ‘새 경로 탐색 중’ 같은 문구가 뜨고, 기대를 했지. 이번엔 뭐라도 달라지겠지. 그런데 음성이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나오는 게 “다음 출구에서 유턴”. 아무리 새 경로를 찾아도 결론이 이거였던 거야. 나한테 가능한 선택지를 전부 제거해놓고 마지막에 한 문장만 남긴 느낌. 완전 전통 강호의 최후의 한 수 같은 멘트랄까.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웃으면서 운전했어. 라디오를 켜도 들리고, 음악 볼륨을 올려도 들리고, 심지어 내가 창문을 열어서 바람 소리를 키워도 그 문장만 딱 남아 있더라. 계속 “다음 출구에서 유턴”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내비의 고장이라기보다 내 차의 내부 규칙이라고 믿게 됐어. 마치 엔진이 아니라 정신이 ‘유턴’에 최적화된 느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길이 막히거나 사고 날 상황은 아니라서, 더더욱 사람처럼 받아들이게 되더라. 그냥 내가 늦을 뿐이야.
결국 목적지 근처쯤 와서야, 내비가 잠깐 말을 멈췄어. 차가 정상적으로 가는 걸 보며 안도하는데, 다음 순간 또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한 번 더 나오는 거야. “다음 출구에서 유턴.” 그때 내가 진짜로 웃음이 터졌지. 목적지 거의 다 왔는데도 마지막까지 그 문장을 붙잡고 있으면, 이건 안내가 아니라 인생 조언이잖아. 그래서 나는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확인했어. 내비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출구 이름이 비슷한 곳이 계속 갱신되면서 계속 같은 ‘다음 출구’만 계산한 거더라. 결국 내가 잘못 간 게 아니라, 내비가 끝까지 자기 세계를 지킨 거였고… 그날 이후로 나는 길을 물어볼 때도 조심하게 됐어. 내비는 친절한데, 고집이 생각보다 너무 ‘정확’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