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면서 서로 배달만 시키는 시기 지나감
연애하면서 서로 배달만 시키는 시기 지나감. 처음엔 그게 진짜 편하고 귀여운 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관계가 배달 앱에 종속됐나?” 싶은 날이 오더라.
처음 만날 때는 성격도 잘 맞고 대화도 잘 됐어. 그런데 둘 다 직장 끝나면 체력 0에 수렴하는 스타일이라, “그냥 뭐 시켜 먹을까?”가 첫 데이트 공식처럼 굳었지. 서로 추천해 주는 재미가 있어서, 고르는 과정이 데이트처럼 느껴졌어. 누가 제일 빨리 도착할지, 누가 리뷰를 더 잘 읽는지, 이런 걸로 은근히 티키타카도 됐고.
근데 문제는 배달이 계속 쌓이면, 사랑도 쌓이질 않더라. 예를 들어 그날 대화는 어땠는지 기억이 아니라 “오늘 몇 시쯤 도착했지”가 먼저 떠오르는 거야. 심지어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알면서도, 서로가 싫어하는 날씨나 기분 같은 건 잘 몰랐어. 그게 더 웃기게도, 배달은 오는데 정작 감정은 늦게 도착했달까.
어느 날은 둘이 나란히 앉아서 같이 주문하는데, 화면만 보다가 서로 “너 오늘 뭐 먹고 싶어?” 같은 말만 주고받고 끝났어. 나는 진짜로 그 순간에 깨달았어.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각자 마음속 시간은 이미 집에서 소파에 앉아 있었던 거지. 배달원은 현관까지 오는데, 우리는 서로의 눈을 현관 문밖까지도 못 데려가고 있더라고.
그래서 어느 쪽이 먼저 변화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상대가 먼저 “우리 이번엔 외식할까?”라고 말했어.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외식이란 단어가 우리 관계의 사전에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진짜로 한 줄이 너무 크게 들리더라. 근데 막상 외식이란 걸 하려니까 또 문제가 생기더라. 우리는 식당 메뉴를 고르는 속도가 아니라, 배달 예상 시간 확인하는 속도로 선택을 해버려서… 처음부터 주문이 아니라 협의가 길어졌어.
처음 가본 데가 분식집이었는데, 거기서도 반쯤은 습관이 남아 있었어. 주문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이거 집에 시키면 몇 분 걸려?”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있더라. 그런데 웨이팅이 생기니까, 그때서야 대화가 살아났어. 기다리는 동안 표정도 보고, 소리도 듣고, 뭐가 불편한지도 티가 나기 시작한 거야. 그제야 ‘같이 있는’ 느낌이 났고, 이상하게도 음식은 배달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어.
그 다음부터는 사소한 체험들이 쌓이기 시작했지. 예전엔 “오늘 뭐 먹어?”가 끝이었다면, 이제는 “오늘 뭐 하면서 왔어?”가 생기더라. 비 오는 날 우산 나눠 쓰고, 테이블 옮기면서 짜증도 잠깐 내고, 계산할 때 서로 카드 꺼내는 타이밍도 맞추게 되고. 그러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 배달은 편하지만, 편함만 반복하면 관계가 몸이 아니라 앱 화면에서만 자라더라.
물론 완전히 배달이 사라진 건 아니야. 가끔은 둘 다 너무 지치면 “오늘은 배달로 살자” 하고 웃으면서 주문해. 근데 그럴 때도 예전처럼 서로 말 없이 화면만 보는 게 아니라, 주문하는 동안 근황을 대충이라도 얘기해. 배달은 그냥 응급처치고, 우리는 그 사이에 대화를 넣는 걸 잊지 않게 된 거지. 그래서 지금은 주문할 때도 마음이 덜 급해졌어.
사실 ‘연애하면서 서로 배달만 시키는 시기’가 끝났다는 건, 그동안의 시간이 실패였다는 뜻은 아니더라. 그땐 서로 귀찮지 않게 해주는 게 사랑의 형태였으니까.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이 배달 도착 시간을 따라갈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흐름을 따라가야 하잖아. 오늘도 저녁 약속 잡고 나가서 먹고 오면, 집에 와서도 배달 앱을 열기보다 서로 사진 한 장만 남기게 돼. 그러다 문득 떠오르더라. 우리가 처음에 왜 그렇게 ‘빠른 도착’에 집착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서로의 마음도 빨리 도착하길 바랐던 거겠지. 근데 이제는 마음은 천천히 도착해도, 같이 기다려 줄 사람이 생긴 거라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