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팀 회의 끝나고 커피컵만 남아있더라
회사에서 팀 회의 끝나고 커피컵만 남아있더라. 아, 정확히 말하면 회의실 문 닫히기 직전까지는 다들 멀쩡했는데, 막상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나오려니까 책상 위에 커피컵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야. 그게 이렇게까지 찝찝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냥 커피컵 하나인 줄 알았지.
그날 회의는 별거 아니었어. 분기 목표, 진행 상황, 다음 액션 아이템. 늘 하던 그 루틴인데, 중간중간 누가 “이건 오늘 안에 정리해줄게요” 이런 말도 하고, 누가 “내일 오전에 공유하겠습니다”도 하고, 다들 말은 또 얼마나 잘하던지. 그래서 나도 마음 편하게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일어섰거든. 회의 끝났으면 당연히 정리도 다 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회의실 문을 열고 다시 안쪽을 한 번 훑는 순간, 그제야 이상함이 확 올라오더라. 보통은 커피 포트나 머그컵이랑, 물컵이랑, 혹은 뭔가 종이뭉치라도 같이 남아 있는데, 이번엔 딱 커피컵만 남아 있었어. 그것도 똑같은 브랜드도 아니고, 팀장이 마시던 컵, 내가 가끔 쓰는 컵, 신입이 어제 말하던 “라떼가 제일 맛있더라구요” 하던 그 컵까지, 마치 누군가 컵만 ‘정확하게’ 골라둔 것처럼 보였어.
나는 잠깐 멈칫했지. “설마 다들 설거지 끝내고 가신 건가?” 싶어서, 싱크대 쪽을 봤는데 싱크대는 깨끗했어. 그럼 회의실에 커피를 놓고 가버린 건 아닌데, 왜 컵만 책상에 남아 있지? 누가 깜빡했거나, 아니면 누가 일부러… 같은 상상까지 하게 되더라. 회의가 끝난 뒤에는 보통 누구 하나가 컵을 챙기거든. 그런데 그날은 그 ‘누구’가 없었어.
팀 채팅방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또 더 찝찝해졌어. 아까 회의 중에 팀장이 “컵은 회수하고 나가세요. 다들 바쁘지만 이건 기본이에요”라고 말했거든.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나는 머릿속에서 팀장의 얼굴을 한 번씩 되감기 하듯 다시 봤어. 근데 지금 내 앞에는 팀장의 컵만 서너 개가 또박또박 남아 있잖아. 기본을 어디에 두고 온 건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결국 내가 컵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또 묘한 포인트가 있어. 컵들이 전부 ‘대충’ 놓인 게 아니라, 사람들이 회의 내내 앉아 있던 자리와 거의 일치하는 위치에 놓여 있었어. 정확히는, 손을 뻗으면 바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거리도 비슷하고, 누가 마지막으로 마시고 그대로 내려둔 느낌이었지. 마치 사람들이 “잠깐만요” 하고 일제히 일어나서 퇴장했는데, 한 명만 남아서 컵을 내려둔 것 같았어.
나는 이쯤 되면 그냥 농담으로 넘길 생각이었거든. 그래서 컵을 설거지 트레이에 담으면서 속으로 “오늘은 누가 컵을 회수 못 하고 퇴장했나 보네” 했는데, 이상하게도 물기 자국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묻어 있더라. 그러니까 누군가가 한 번에 정리하려다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뭔가를 중단한 흔적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물기 방향이… 내가 의자에서 일어설 때 몸이 돌아가던 방향이랑 비슷하다는 게 제일 웃기고 소름이었어. 나만 이상한 건가?
설거지 끝내고 회의실을 한번 더 보는데, 화이트보드에 남아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 “회의 끝. 커피는 본인이 처리.” 네, 누가 쓴 건지 모르겠지만 딱 그렇게 적혀 있었거든. 보통 화이트보드에는 액션 아이템이 남아야 하는데, 그날은 커피 처리 지침이 가장 크게 남아 있었어. 그리고 그 글씨가… 이상하게도 내가 회의 초반에 들고 있던 펜으로 쓴 것처럼 보였어. 내가 회의 끝나고 펜을 놓고 왔나? 잠깐 생각하다가, 그제야 아차 싶었지. 내가 손에 들고 있던 게 그 펜이었거든.
결국 결론은 하나였어. 다들 회의 끝났다고 우르르 나가면서, “컵은 누가 할까?” 같은 걸 서로 눈빛으로 확인했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것. 근데 문제는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걸 몰랐다는 거야. 나는 그냥 자리 정리랑 노트 챙기고 나오려 했고, 팀원들은 이미 “다 끝냈겠지” 하고 먼저 간 거지. 그래서 남아있던 커피컵이 내게 말 걸듯 “네가 마지막이었어”라고 통보한 셈이 된 거야.
다음 날 아침에 팀장한테 장난처럼 물어봤어. “어제 회의실에 커피컵만 남아 있던데, 혹시 제가 깜빡한 건가요?” 그랬더니 팀장이 한 박자 쉬고는 “아니, 너도 같이 정리했잖아”라고 하더라. 나는 속으로 “내가 정리한 컵이 그 컵들이 맞긴 한데요…?”라고 말할 뻔했지만, 그냥 웃고 말았지. 어쩌면 회사에서는 커피컵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마지막을 양보하는 게임을 하는 건지도 몰라. 어제 이후로는 회의 끝나면 제일 먼저 컵을 확인하게 되더라. 컵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니까, 그게 제일 좋은 규칙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