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내 번호로 주문한 배달이 집에 도착함
가족이 내 번호로 주문한 배달이 집에 도착함. 진짜로 제목 그대로예요. 아침부터 휴대폰이 계속 울리더니, 배달앱에서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 같은 알림이 연달아 뜨는 거예요. 저는 당연히 제 주문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자세히 보니까 주소는 우리 집인데, 품목이… 제가 평소에 안 먹는 것들이 한가득이더라구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누가 내 번호로 주문했대?”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결제 내역을 확인했죠. 그런데 배송점 옆에 가족이 좋아하는 메뉴가 찍혀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엄마가 좋아하는 소스 듬뿍 그거, 아빠가 “이건 국룰이지”라고 하던 그 메뉴, 그리고 제가 보기엔 너무 달아서 손이 잘 안 가던 음료까지. 제 번호로 주문한 건 맞는데, 오히려 제가 주문한 것처럼 알림이 뜨니까 멘붕이 왔습니다.
현관 벨이 한 번 울리더니, 배달원이 “여기 1층 맞으세요?” 하고 확인을 하더라구요. 저는 집에 있었고, 당연히 제가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문을 열었죠. 그런데 배달원 표정이 뭔가… 이상했어요. “이거 전화번호로 주문하신 분이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저한테는 아주 짧게 말하고는 사라지듯 내려가더라구요. 저는 순간 “어? 나도 모르게 누가 대신 주문했나” 싶었습니다.
문을 닫고 상자를 뜯는데, 집 안에서 소리가 나더라구요. 거실 쪽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야, 너 알지? 오늘 네가 바꿔준 거 있잖아. 그거 대신 감사하다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좀 시켰어!” 라는 말이요. 저는 그 순간 생각이 정리됐습니다. 아, 오늘 제가 뭘 바꿔줬다고요? 지난주에 제가 귀찮아도 고쳐준 인터넷 공유기 설정 그거요.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어요. 가족들은 제가 뭘 받는지도 모르고,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오케이” 하고 넘어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엄마는 “네 번호로 시키면 포인트가 더 쌓이잖아”라고 태연하게 말했고, 아빠는 “배달 오면 너가 가져다 놓는 거지 뭐”라고 하면서 마치 제가 배달 대행 직원인 것처럼 얘기하더라구요. 저는 포인트가 뭐가 중요하고, 내 번호가 왜 쓰이는지부터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상자가 널려 있어서 말을 꺼내는 타이밍이 애매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차분히 “근데 내 번호로 주문한 건 좀…”이라고 말하려고 했죠. 그랬더니 동생이 갑자기 끼어들더라고요. “형이 번호를 안 쓰면 뭐해? 우리가 쓰면 되지!” 이 말을 들었을 때, 웃음이 나올 뻔했어요. 사실 웃기긴 했는데, 동시에 황당하잖아요. 내 번호가 집 안에서 공유되는 ‘가전 리모컨’이었나요? 누를 때마다 장바구니가 열리는 신비한 리모컨인가 싶었습니다.
저는 일단 배달앱을 켜서 주문자 정보를 확인했어요. 결제는 제 카드로 되어 있더라구요. 여기서부터 좀 더 진짜 현실이 왔습니다. 엄마는 “아, 결제는 네가 자동으로 되는 것 같아서… 근데 괜찮아, 나중에 내가 줄게”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어요. “나중에”라는 단어가 얼마나 강력한지, 가족들은 늘 그 단어로 모든 문제를 덮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주문 내역을 캡처해서 조용히 보관해뒀습니다.
그리고 제일 웃긴 건 제가 주문한 적이 없는 메뉴들인데도, 집에서는 마치 제가 “오늘 시킨 거네?” 하듯이 자연스럽게 굴더라는 거예요. 각자 자리에서 먹기 시작하니까, 제 번호로 주문한 건 ‘문제’가 아니라 ‘소소한 이벤트’가 된 느낌이랐습니다. 엄마는 첫 입 베어 물고는 “역시 이건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라고 했고, 아빠는 “다음엔 더 큰 사이즈로 하자”고 말했어요. 저는 그 말 듣고 “내 번호로 주문해서 내 취향까지 맞추는 건가?” 하고 혼자 감탄했습니다. 가족들 능력이 무섭다 싶었어요.
결국 저는 계산을 다시 하려고 했습니다. 배달앱에서 환불이 가능한지 보고, 고객센터에 문의 같은 걸 생각하다가, 가족들의 표정을 보게 됐어요. 다들 뭔가 기분이 좋아 보였고, 특히 동생이 “형 덕분에 오늘 맛있게 먹는다” 같은 말을 하면서 제 앞에 젓가락을 놓더라구요. 그 순간, 화가 좀 풀리긴 했습니다. 근데 동시에 또 생각해요. 내가 덕분에 맛있게 먹는 게 아니라, 내 번호가 덕분에 결제되는 거잖아…?
마무리는 또 제일 어이없게 끝났습니다. 밤에 엄마가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네가 안 쓰는 시간엔 절대 안 시킬게”라고 하더니, 다음 날 점심에 또 알림이 오더라구요. 이번엔 배달이 아니라 “주문이 준비 중입니다”였고, 품목은 또 제가 싫어하는 반찬 조합이었어요. 저는 반사적으로 알림을 확인하고, 딱 한 문장만 보냈습니다. “엄마, 내 번호는 가족용이 아니라 내 거예요.” 그랬더니 엄마가 답장을 하더라구요. “알지, 그래서 오늘은 내 번호로 시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