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너 자취 힘들지?”라며 대신 해주는 게 있음
가족이 “너 자취 힘들지?”라며 대신 해주는 게 있음. 진짜로요. 제가 자취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엄마가 부엌에서 뭔가를 찾는 소리와 함께 “너 요즘 혼자 살지? 힘들지?” 이러는 거예요. 보통은 “밥 잘 챙겨 먹어” 같은 잔소리로 끝나야 하는데, 그날은 말이 길어졌습니다. 마치 제가 운영 미숙으로 망해가는 가게 사장인 것처럼요.
처음엔 당연히 따뜻한 마음인 줄 알았어요. 엄마가 “그래, 내가 대신 해줄게”라고 말하더니, 바로 택배 주소를 제 집으로 맞추는 겁니다. 아빠는 옆에서 “자취는 진짜 귀찮아. 알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요. 그 순간까진 ‘대체 뭐를?’ 싶었는데, 정작 첫 타자는 심플했어요. 냉장고에 넣어두면 몇 주는 먹을 수 있는 반찬 세트랑 밑반찬들… 뭐가 들어있는지 설명을 너무 잘해주길래, 저는 ‘이게 가족의 사랑이지’ 싶었죠.
그런데 문제는 “대신 해주는 것”이 단순히 반찬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날 저녁,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가 꽉 찼는데, 엄마가 그걸 보고 “잘 넣었네. 그럼 다음은 설거지!”라고 하시는 겁니다. 설거지요? 제가 설거지를 못 해서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설거지는 그냥… 귀찮아서 미루다가 한 번에 하긴 하는데, 그걸 아신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그다음 주부터 매주 똑같이 “너 자취 힘들지? 내가 대신 해줄게”가 시작됐습니다. 엄마가 대신 해준다고 해놓고, 제 집 앞에 드라이클리닝 맡긴 옷이 쌓이더라고요. 그 옷들 옆에는 이상하게도 작은 메모가 붙어있어요. “이번엔 돌돌이로 먼지 제거 잘했어. 냄새는 걱정 마.” 제가 먼지 제거를 안 했던 걸 가족이 어떻게 아는지, 그때부터 약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수상했어요. 어느 날은 제가 장 보러 나갈 준비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죠. 현관 앞에 비닐봉지가 두 개 있었는데, 겉면에 제 이름이 적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내용물은… 쓰레기였어요. 집에 가만히 있었는데 누가 제 쓰레기를 정리한 거잖아요. 제 머릿속에는 딱 하나의 결론만 떠올랐습니다. 가족이 “대신 해주는 것”을 실제로 실행하고 있다는 것. ‘사랑의 방식이 과학이다’ 같은 소리가 머리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제가 확인을 해봤습니다. 다음날 밤, 문틈으로 살짝 보려고 했는데, 그때 엄마가 현관 앞에서 아주 침착하게 택배 상자를 내려놓고 있더라고요. 저를 봤는데도 놀라지 않고, 마치 이미 제가 관찰 중인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너 왜 그래? 내가 대신 해준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어?”라고 묻는 겁니다. 저는 순간 말을 잃었고, 엄마는 “설거지 있잖아. 네가 미루는 것 같길래. 그리고 가끔 수건 냄새도 나더라. 자취하면 그런 거 생겨. 그러니까 내가 관리해주는 게 맞지 않겠니?” 이러는 거예요.
그 말에 아빠가 합류하더니, “너 혼자 살면 세탁기 돌리는 날은 결국 망설이게 돼. 그래서 우리가 대신 돌린다. 그리고 빨래 널 때 네가 늘 한쪽만 남겨두잖아. 건조가 덜 되면 곰팡이 냄새 나. 그거 싫어.”라고 진짜로 논리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솔직히 저는 그동안 빨래를 널 때 한쪽을 남겨둔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은 이미 제 생활 패턴을 통계처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대신 해주는 게 있음’의 의미가 “도와줄게”가 아니라 “너의 생활 루틴을 우리가 알아서 굴릴게”에 가까웠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충격적인 건, 제가 자취를 하면서 제일 자신 있었던 게 요리였는데 그마저도 “대신 해주는 게 있음”에 포함되어 있더라고요. 냉장고 앞에 냉동식품이 잔뜩 차고, 그 사이에 “오늘은 네가 국 끓일 차례였어. 대신 했어.” 같은 메모가 붙어있어요. 국을 끓이지도 않았는데요. 전 분명히 “나 요리 잘해”라고 말하면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가족은 제가 냄비를 꺼내는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대신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제가 할 일은 점점 줄어들고, 남는 건 먹는 행위뿐이에요. 이게 자취인지, 반쯤 무료 급식장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감사하긴 했습니다. 매번 “너 자취 힘들지?” 한마디로 시작해, 제 집이 항상 정리되어 있고, 빨래 냄새도 안 나고, 냉장고는 항상 먹을 게 있거든요. 다만 문제는 제가 “혼자 산다”는 감각이 자꾸 사라진다는 거예요. 어느 날은 제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다가 장갑을 끼는 순간, 손이 멈추더라고요. 왜냐면… 이미 싱크대는 깨끗했거든요. 저는 그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결국 접시를 하나 꺼내서 제 손으로 한 번 씻어봤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마지막 예의 같은 거랄까요.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가족이 “너 자취 힘들지?”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문자가 옵니다. “오늘도 대신해. 넌 그냥 쉬어.” 그 문자를 보면 웃기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져요. 자취가 편해진 건 좋은데, 어느 순간부터 제 생활은 가족의 운영 시스템에 자동으로 연결된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누가 뭐래도 제일 힘든 건 제가 아니고, 가족이 저 대신 걱정하는 그 노동이니까요. 전 그냥… 다음 번엔 제가 한 번, 진짜로 “대신” 해드려볼까 생각 중입니다. 설거지는요, 다음에요. 아마 이미 싱크대가 깨끗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