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다가 결국 ‘취향’ 때문에 싸웠던 날
연애하다가 결국 ‘취향’ 때문에 싸웠던 날을 아직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아니, 그 정도면 취향이 아니라 그냥 성격 아냐?”라는 내 말이에요. 근데 그날은 진짜로 성격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둘 다 서로의 취향을 정답처럼 들이밀다가 폭발한 사건이었죠.
우리는 평소에 데이트를 꽤 잘 맞추는 편이었어요. 영화도 취향 맞으면 좋고, 밥도 대충 “여기 가자” 하면 “오케이” 하는 스타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주말 저녁을 “좀 특별하게” 해보고 싶어서, 예약을 해뒀다는 말에 설레 있던 상태였거든요. 장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메뉴도 제가 미리 보고 “여기 시그니처는 꼭 먹어야 돼”라고까지 했고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그동안 참고 있던 말이 터졌는지 “여기는 피자도 그렇고 파스타도 다 괜찮은데, 특히 올리브오일이 맛있어”라고 계속 설명을 했고, 상대는 고개만 끄덕이면서도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더라고요. 그리고 메뉴를 고르려고 했을 때, 상대가 “나는 올리브오일은 향이 너무 강해서 별로야. 그냥 빵이랑 먹는 소스가 좋은데?”라고 말했죠.
저는 그 말 자체는 이해했어요. 취향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미리 말해둔 것들이 머릿속에서 “아까 내가 왜 굳이 설명했지”로 바뀌면서, 말이 날카로워졌어요. “그건 향이 강한 게 아니라 진짜 맛이 있는 거야. 너는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이렇게요. 상대는 잠깐 멈칫하더니, “아니, 난 익숙함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입이 문제야. 왜 자꾸 내 취향을 교정하려고 해?”라고 되받아쳤고, 그 순간부터 대화가 토론처럼 변했어요.
다들 알죠. 싸움은 대부분 사소한 음식에서 시작해서, 어느새 인생 전반으로 번지잖아요. 저는 “아니 내가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추천한 거잖아”를 반복했는데, 상대는 “추천은 할 수 있어도, 내 선택을 ‘오해’처럼 만드는 순간부터는 강요야”라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분위기는 팍 식더니, 식탁 위에 남은 빵 부스러기만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결론은 메뉴 변경이었는데, 그게 또 아이러니했죠. 상대는 더 무난한 메뉴로 바꿨고, 저는 원래 계획했던 시그니처에 집착했어요. 근데 먹어보니까 상대 말대로 올리브오일 향이 생각보다 확 강하긴 하더라고요. 제가 그걸 인정하는 대신, “그래도 맛은 있잖아. 네가 싫어하는 게 이해는 되는데 완전히 부정할 필요가 있냐” 같은 말을 했고, 상대는 “보통 ‘싫다’는 말에 이렇게 감정이 따라붙진 않아”라고 한 방 더 꽂았어요. 그 순간 저는 내가 지금 싸우고 있다는 사실보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지?”를 뒤늦게 자각했죠.
식사가 끝나고 카페로 이동하는데도 말이 잘 안 붙었어요. 평소엔 걷다가 “여기 사진 예쁘다” 같은 농담도 했는데, 그날은 둘 다 말수가 줄고 시선이 어딘가를 계속 피해 다니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집에 가서라도 풀어야지 싶어서, 집 가는 길에 조용히 “미안해. 내가 설명이 많았고, 너 취향을 교정하려던 것 같아”라고 말했거든요. 그러자 상대가 잠깐 웃더니, “사과는 하는데, 아직도 ‘네가 싫어한 이유’는 제대로 안 받아들였잖아”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말이 진짜 이상하게 꽂혔어요. 저는 사과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 입장에서는 사과의 포장이 “내가 맞고, 너는 틀렸던 건 아니지만 결국 고쳐지면 좋겠어”로 들렸던 거죠. 그래서 다음 문장에서 제가 바로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를 꺼내버렸고, 둘째 폭발이 일어났어요. 이게 취향 싸움의 묘한 점인데, 내용은 음식이고, 실제로는 서로가 ‘존중’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던 거더라고요.
그날 결국 한밤중에 조용히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신 다음 날 아침에,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 풀리더라고요. 상대가 “어제는 미안. 나도 네가 추천한 걸 그냥 ‘내 취향 교정’으로만 받아들인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그럼 우리 다음 데이트는 ‘둘 다 싫을 수 있는 걸’ 미리 합의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문장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나왔어요. 싫을 수 있는 걸 합의하자니… 마치 서로의 입맛에 대한 안전 규칙을 만드는 느낌이랄까.
그 이후로 우리는 데이트 메뉴 고를 때, 서로에게 “이건 너 취향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같은 질문을 먼저 해요. 그러면 싸움이 줄더라고요. 그리고 가끔 그날을 떠올리면, 진짜 황당한 게 있어요. 나는 취향이란 게 결국 “정답”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취향은 정답이 아니라 “서로가 살아온 방식”에 가까운 거였던 거죠. 그래서 지금도 가끔 올리브오일이 강한 요리를 보면, 그날 식탁 위의 부스러기가 떠오르면서 피식 웃게 됩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내 입만의 승부는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