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때 상대가 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줌
연애할 때 상대가 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줌… 이게 진짜 장점인지, 아니면 내가 평생 “농담 모드”만 켜고 사는 건지 아직도 헷갈립니다. 근데 시작은 정말 사소했어요. 첫 데이트 때 내가 “너 웃으면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아. 근데 나는 카메라가 아니라 눈치를 찍는 사람이야” 같은 말 했거든요. 그냥 분위기 풀려고 툭 던진 거였는데,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럼 오늘은 눈치 촬영권부터 확보해야겠네요”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때까진 “아, 말장난 좋아하나보다” 싶었어요. 그래서 다음엔 더 가볍게 또 농담을 던졌죠. “나 사실 연애는 못해도, 마음은 계속 업데이트해. 근데 업데이트가 자주 되면 배터리도 빨리 닳아”라고 했는데, 상대가 진지하게 “그래서 배터리 관리가 필요하군요. 그럼 충전 계획을 같이 세워요” 이러는 거예요. 대체 내 입에서 농담이 아니라 정책 문서가 나온 건가 싶어서 웃다가 결국 졌습니다. 상대가 웃지를 않더라고요. 웃을 타이밍에, 상대는 계속 진지했어요.
그 후로는 농담을 던질 때마다 상대가 ‘해석’을 해요. 예를 들면, 제가 “오늘 너랑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라. 시계가 아니라 너 때문에 심장이 빨리 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상대가 “심장이 빨리 뜨는 건 좋은 신호예요. 다만 너무 빨라지면 숨도 같이 맞춰야 하니, 천천히 걸어볼까요?”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그 말의 결론이 ‘설레네’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결론이 ‘산책 프로토콜 시행’이더라고요.
어느 날은 영화 보러 갔는데, 제가 일부러 “나 오늘 주인공처럼 관객들 앞에서 대사 외우고 올게. 너는 내 리허설 감상해줘”라고 했어요. 물론 제가 진짜로 대사 외울 생각은 1도 없었고요. 근데 상대가 팝콘을 내려놓고 “그러면 리허설 시간부터 정해야죠. 스포일러는 금지예요. 대신 영화 제목을 힌트로 줄게요” 이러는 거예요. 저는 그 자리에서 “아니, 힌트 필요 없다고…”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이미 영화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서 진지하게 힌트를 찾고 있는 표정이라 말이 멈췄습니다.
근데 더 웃긴 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뒤에 상대가 ‘실행’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너랑 있으면 나도 갑자기 성실해질 것 같아”라고 해버리면, 상대가 다음 날부터 갑자기 일정표를 가져와요. “성실함 유지용으로 오늘 해야 할 것들 체크해둘게요” 하면서요. 저는 그게 설레는 말로 들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그걸 생활 습관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우리 둘이 데이트하면서도 이상하게 ‘팀플’ 같은 느낌이 나요. 사랑인데, 과제 같이 하는 느낌. 근데 재밌어요. 제 기준에서요.
근데 문제는 제가 농담을 던지면, 상대가 항상 그 농담의 원인을 찾고, 대책까지 세운다는 거예요. 제가 “나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아. 내 농담이 뇌를 때릴 정도로 잘 들어갈 것 같아”라고 했더니, 상대가 “그럼 너 뇌가 때리는 게 아니라, 내가 맞춰서 받아줄게요. 안전거리 유지하겠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저는 갑자기 말장난이 아니라 공학 실험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웃긴 게,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결국 제가 웃게 되고, 상대도 ‘안전거리’를 지키면서 웃더라고요. 둘이 웃고 있는데도 뭔가 매뉴얼이 존재하는 느낌…
한 번은 진짜로 마음이 약간 흔들릴 때가 있었어요. 제가 “가끔은 너가 너무 진지해서 부담될 때가 있어”라고 살짝 투덜거렸거든요. 근데 상대는 그걸 농담으로 처리하지 않고, 진짜로 들어요. “부담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럼 농담의 강도를 조절할게요. 대신 당신이 웃는 속도는 유지해요”라고 말하는데, 이게 말이 돼요?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에는 제 투덜거림이 그냥 제 마음을 풀어놓으려는 연습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투덜대는 이유가 상대를 시험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안심하고 싶어서였다는 걸… 상대가 알아채는 느낌이랄까요.
그 이후로는 저도 농담을 던질 때 “이건 농담이야”라고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설명을 하는 순간에도 상대는 또 진지해요. “농담이라는 표기가 있어야 안심되네요. 그러면 앞으로는 농담 표지판을 달겠습니다” 이러면서 말 끝마다 작은 팻말을 상상하는 표정 짓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가 포기했죠. 그냥 농담도 연애의 언어니까, 상대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두자고요.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더 웃기게 만드는 거뿐이더라고요.
지금도 생각하면 웃겨요. 우리는 아직도 농담을 주고받는데, 상대는 항상 ‘진지하게 해석’하고 저는 항상 ‘살짝 얼어붙게 만드는’ 쪽으로 참여합니다. 근데 그게 이상하게 서로를 편하게 만들어요. 상대는 제 농담이 실제 문제처럼 무서워지지 않게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저는 그 안전벨트 덕분에 더 과감하게 농담을 던지게 되거든요. 결국 결론은 하나예요. 연애에서 제 농담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아니라, 제 농담을 사랑의 대화로 받아주는 사람을 만난 거지… 그래서 오늘도 또 뻔뻔하게 농담 던지면, 상대는 또 진지하게 “그럼 다음엔 이 농담의 후속편을 준비해볼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 말 들으면, 제가 도망칠 시간도 없이 그냥 웃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