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거래에서 내가 늦었는데 상대가 더 늦음
당근 거래에서 내가 늦었는데 상대가 더 늦음. 이런 말이 그냥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내 인생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처음엔 제가 늦는 편이었어요. 약속 시간이 저녁 7시였는데, 저는 퇴근길에 버스가 한 번 꼬이는 바람에 10분쯤 지각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지금 바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메시지는 남겼죠.
상대는 뭐라고 했냐면, 딱히 뭐라 안 하더라고요. “괜찮아요~ 저도 곧 나갈게요” 이 정도. 근데 그때만 해도 저는 그게 제일 큰 복선인 줄 몰랐습니다. 저는 무슨 당근 거래가 연극이냐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주연이고 상대는… 더 큰 연출을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약속 장소로 도착하면서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봤어요. ‘도착했어요?’ 확인하자마자 상대가 보낸 마지막 답장이 떠 있었습니다. “조금만요, 차가 막혀서요.” 저는 “아, 저도 막혔는데” 하고 동병상련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죠. 그런데 거기까지는 진짜 평범했어요.
사실 저는 그 당시 가게 앞에서 물건을 확인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사진이랑 똑같이 생긴 물건인지, 혹시 흠집은 없는지, 가격 대비 괜찮은지 이런 걸 체크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시간이 계속 흐르는 거예요. 10분, 15분, 20분. 저는 손이 좀 바빠지더라고요.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감정 소모가 큽니다.
그래도 상대가 늦는 상황이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예의 지키면서 “언제쯤 가능할까요?” 정도 물어보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지금 근처 오시나요? 저 여기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 답장이 왔는데, 이게 정말… “저도 지금 나가고 있어요!” 였습니다. 지금까지 차 막힌다더니, 나가고 있다고요? 저는 잠깐 멍했습니다. 그 와중에 제 앞에선 간판 불빛이 살짝 흔들리고, 바람이 불고, 제 손에는 진짜 쓸데없이 따뜻한 커피가 들려 있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준비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저는 체감상 1시간쯤 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30분도 안 됐을 수도 있는데, 기다리면 시간이 비슷하게 늘어납니다. 저는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했어요. “혹시 어디쯤이세요? 출발하신 거 맞죠?”
상대는 또 답장을 길게 안 하더라고요. “네, 방금 나왔어요. 죄송합니다. 늦네요.” 근데 그 문장 속에 묘하게 당당함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깨달았죠. 제가 늦은 줄 알았는데, 상대는 늦을 준비가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제가 늦는다고 말한 시점부터, 상대는 제 속도에 맞춰 ‘더 늦기’를 완성하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상대가 도착했을 때, 저는 솔직히 반쯤 웃고 반쯤 당황했어요. 상대는 마스크 쓰고, 손엔 뭔가 담긴 봉투를 들고 있더라고요. 인사하고 물건 확인하면서 “아까 제가 늦어서 죄송하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늦으셨네요”라고 말했더니 상대가 웃으면서 하더라고요. “그러게요. 저도 늦는 줄 알았는데… 당근은 타이밍이 다 같아요. 누구든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 말 듣자마자 빵 터졌습니다. 아니, 당근 거래가 타이밍 게임이면 제가 이겼어야죠. 그런데 현실은 제가 ‘늦었는데 상대가 더 늦음’을 정답처럼 맞춰버린 거니까요. 거래 끝나고 집에 가는데 문득 생각났어요. 다음에 제가 또 누군가를 기다리게 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최소한 오늘만큼은 “저도 곧 나갈게요” 같은 문장을 조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저는 당근 거래에서 시간을 보면 자동으로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기다릴 땐 서로 늦어지는 게 당근의 규칙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