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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회의 끝나고 보니 내가 사회자였음

2026-08-12 05:41:11 조회 7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회사 회의 끝나고 회의실 불이 슬쩍 꺼질 때쯤,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요. 대충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다들 시선이 한 번씩 제 쪽으로 스르륵 넘어가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회자였음.

사실 전날까지만 해도 제 역할이 “회의록 담당”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자료도 그쪽에 맞춰 정리했고, 노트북에 회의록 템플릿도 띄워놨어요. 그런데 회의 시작하고 나서 누가 “자, 오늘 진행은 사회자분께서…”라고 했을 때, 저는 고개만 끄덕이고 “네네, 회의록은 제가…”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사회자라는 단어를 들었지만, 그게 제 얘기인지는 회의 내내 눈치 못 챘어요.

더 웃긴 건, 회의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다는 겁니다. 제가 사회자였다는 걸 아무도 티 내지 않았어요. 대신 누군가는 발표하고, 누군가는 의견을 덧붙이고, 중간중간 “좋습니다” “동의합니다” 같은 리액션이 나왔죠. 저는 그저 타이핑을 빠르게 치며 “네, 네, 확인했습니다” 같은 감탄사까지 회의록에 옮기려고 했고요.

그런데 진행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한 건 제가 발표자 말을 끊어야 할 타이밍이 왔을 때였어요. 팀장님이 “그럼 여기서—”라고 말하자마자, 제 입이 먼저 움직였죠. “네, 그래서 결론은… 일단”이라고요. 회의실이 아주 잠깐 정적이 왔는데, 저는 그 정적이 제 논리 때문인지, 아니면 제가 제때 마이크를 안 잡아서인지 구분이 안 됐습니다.

그 정적을 깨려고 제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제가 넘길 순서가 아니었더라고요. 옆자리 과장님이 조용히 웃으면서 손을 들어 “잠깐만요, 지금은 그다음 질의응답 파트가 아니라…”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 순간 심장이 철렁해서, 회의록 템플릿 위에 손바닥이 땀에 젖는 걸 느꼈습니다. 아, 내가 사회자면 이런 걸 알아야 하는 거구나 싶었죠.

근데 왜 아무도 그때 말 안 해줬냐면요, 다들 서로에게 “아, 쟤는 알아서 하겠지” 모드였던 것 같아요. 저는 진행 흐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성실하게 끼어들었고, 다들 그걸 또 “진행을 잘하네”라고 받아들인 거죠. 결과적으로 사회자가 제 실수를 사회자답게 덮는 방식으로 진행을 이어간 셈이에요. 솔직히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제가 잘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모두가 배려하는 바람에 망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회의 후반에 갈수록 제 머릿속은 완전 혼파망이 됐습니다. “다음 발언 부탁드립니다”를 세 번 말했는데, 실제로는 한 번만 발언이 예정돼 있었고, “질문 있으신 분?”이라고 했더니 질문 대신 자료 파일을 찾는 사람이 나왔어요. 그 사람 표정이 “저는 질문이 아니라 파일이 필요합니다”였거든요. 저는 그제야 사회자 톤을 유지한 채, 얼른 “아, 네 그 파일은 제가 요청하겠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러자 회의실에서 웃음이 조금 나왔고, 저는 그 웃음을 수습하려고 더 급하게 마무리 멘트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팀장님이 정리하면서 “오늘 수고한 분들…”이라고 말하실 때, 누가 제 등 뒤에서 “사회자님 정말 고생하셨어요”라고 속삭이듯 말했어요. 그 말 듣고 나서야 저는 제 노트북 화면을 봤습니다. 거기엔 회의 공지 문구가 그대로 떠 있었는데, “진행: OOO(사회자)”라고 적혀 있었어요. 아, 제가 전날 그걸 봤는데도 ‘회의록 담당’만 눈에 들어오고 사회자는 그냥 글자처럼 스쳐 지나간 겁니다. 진짜 사람은 자기가 맡은 것만 기억하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회의록을 메일로 보내고 나서, 저는 스스로에게 체크를 했습니다. “사회자 톤은 유지했나?” “발언권 흐름은 살렸나?” “안건 순서는 안 꼬였나?”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결론은 하나였어요. 꼬였습니다. 근데 다들 이상하게도 화를 안 내고, 오히려 “진행이 매끄러웠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더 당황했고요.

퇴근길에 혼자 생각했습니다. 사회자가 대단해서 일이 잘 굴러간 게 아니라, 회의실 사람들이 저를 ‘사회자’로 착각해 준 덕분에 아무도 큰 사고 없이 끝난 거 아닐까. 다음 회의 일정표를 볼 때는 제발 먼저 사회자를 찾고, 그다음에 회의록을 확인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메일함을 열 때마다, 어김없이 제목이 떠요. “회의 진행: 저요.”… 그럼 저는 또, 아무 말 없이 고개부터 끄덕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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