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서 전원 누락으로 냉장고 멈췄다 다시 시작함
제목: 자취방에서 전원 누락으로 냉장고 멈췄다 다시 시작함. 이게 무슨 영화 예고편 같은데, 진짜로 내 자취 인생이 이런 클리셰를 맞이했습니다. 밤에 야식 꺼내려다 “어? 냉장고가 왜 조용하지?” 하고 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부터 공포가 아주 조용히 시작되더라고요.
그날은 그냥 평범했어요. 퇴근하고 와서 씻고, 밥 먹고, 라면 스프 다 먹었을 때쯤 “아 맞다, 맥주 하나만…” 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죠. 근데 냉기가 아니라 공기 찬 기분 같은 게 살짝 나올 뿐, 전형적인 ‘삐- 소리 내며 돌아가는 냉장고’의 분위기가 없었습니다. 소리도 없고, 내부 조명만 켜져 있는데, 그게 더 어색했어요.
처음엔 단순 정전인가 싶어서 관리앱(있긴 해요, 건물 관리하는 앱)을 켜봤는데 상태가 정상이래요. 저는 “아니겠지…” 하면서 다시 문을 닫았다가 열어봤는데, 진짜로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냉장고 문 닫으면 보통 뭔가 ‘툭’ 하는 느낌이 있는데, 그 촉감마저도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냉장고가 멈췄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확인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기억이 났습니다. 오늘 낮에 전기장판 켰다가 끄면서 콘센트를 뽑았거든요. 집에 들어오면 보통 “전기장판은 전기 많이 먹으니까” 하면서 습관적으로 콘센트를 확인하는데, 그때 냉장고 전원도 같이 건드렸던 것 같아요. 자취방 콘센트가 은근히 빽빽해서, 하나 뽑으면 옆 것도 덜컥 뽑히는 구조거든요. 문제는 그게 오후에 일어난 일이라, 저는 밤이 돼서야 냉장고가 멈춘 걸 알았다는 거.
그래서 냉장고 뒤를 봤는데, 아뿔싸. 콘센트가 반쯤 나가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나갔는데 어쨌든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애매한 상태. 손으로 톡 건드리니까 툭 빠지면서 전원 들어오던 느낌이 없더라고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아… 내가 오늘 김치랑 우유를…?” 같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냉장고가 멈추면 제일 무서운 게 음식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방금 뭘 망쳤지’라는 자책이더라구요.
일단 전원을 제대로 꽂고 다시 켰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별 신기한 드라마가 펼쳐지더라고요. 전원 버튼 누르자마자 아무 반응 없다가, 한 10초쯤 후에 “웅—” 하는 낮은 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제서야 냉장고 내부 팬이 도는 소리가 들리면서, 방 안 공기가 다시 ‘냉장고 모드’로 돌아가는 느낌이 확 와요. 처음엔 안심했는데, 동시에 “지금부터 얼마나 걸려야 정상으로 돌아오지?”라는 걱정이 또 시작됐죠.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내부가 생각보다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긴 했습니다. 그래도 자취생은 합리적 의심을 합니다. 김치 통은 젖먹던 힘까지 모아서 확인했고, 우유는 냄새 맡아보고, 반찬통은 손으로 온도 감지해보고… 그러다가 제일 웃긴 건, 제가 마치 과학자라도 된 것처럼 휴대폰으로 시간 기록을 했다는 거예요. “오늘 멈춘 시간대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였지?” 이러면서요. 저는 자취방에서 냉장고 고장 해결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감독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다시 켠 뒤에도 한참 동안은 소리가 들쭉날쭉했어요. 마치 “나 이제 돌아왔는데, 너가 멈췄을 때 뭘 했는지는 다 기억해” 같은 느낌. 그래서 마음 편히 먹기엔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결국 그날 야식은 따뜻한 거로 바꿨어요. 냉장고가 다시 제 컨디션을 찾기 전까지는, 제가 먼저 컨디션을 잃지 말자는 결심이랄까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온 걸 들었을 때… 정말로 안도감이 왔습니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고, 저는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콘센트 정리한다고 전원줄 라벨링까지 했어요. “냉장고” “전기장판” “선풍기” 이딴 거 붙이는데, 붙이고 나서 보니까 왜 이렇게 스스로가 귀여운지 모르겠더라구요. 사실 자취는 매일 새로 배우는 것 같아요. “집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편해지는 거다” 같은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결론은, 냉장고가 멈춘 건 기술 문제도 아니고 고장도 아니었는데도 저만 갑자기 위기 상황 당한 거였습니다. 누가 보면 저는 음식보다 전기와의 관계가 더 소중한 사람 같죠. 그리고 지금도 가끔 전기장판 끌 때 손이 자동으로 멈칫해요. “나 또 냉장고랑 약속 깨는 건 아니지?” 하고요. 그러다 다시 정상 소리 들리면, 그냥 별거 아닌데도 마음이 피식- 풀립니다. 자취방 냉장고는 거창하게 망가지지 않아도, 제 행동을 잠깐씩 시험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