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내 이름으로 회의실 예약이 되어있던 이유
회사에서 출근하자마자 달력 앱부터 봤는데요, 내 이름으로 회의실 예약이 딱 잡혀 있더라고요. 그것도 오늘 날짜로, 시간도 세 개나 겹쳐서요. 저는 당연히 “내가 뭘 잘못 눌렀나” 싶어서 확인했는데, 예약자 이름이 제 실명으로 떡하니 박혀 있었고, 의제에는 “진행 점검” “보고용 준비” 같은 말이 줄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무슨 회의라도 잊고 있었나 했어요. 그런데 내 일정엔 아무것도 없고, 이메일 알림도 없고, 팀장한테서 “왜 빠져?” 같은 메시지도 없었죠. 그러다 회의실 앞 유리문에 붙어있는 안내 스티커를 봤는데, 거기에 제 이름이 들어간 회의가 이미 시작된 것처럼 표시돼 있었어요. 문제는 그 회의실을 평소에 저랑 같이 쓰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 이름을 누가 가져다 붙였다는 얘긴데, 이유가 도저히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예약 시스템 담당자에게 물어봤죠. “제가 예약을 한 적이 없는데 제 이름으로 회의실이 잡혀 있어요. 혹시 누가 제 계정으로 예약했나요?” 그랬더니 담당자가 한 박자 쉬더니 “아, 그거요? 예약은 되는 건데요, 로그인이랑 IP 확인해볼까요?”라고 말하는데 표정이 묘하게 굳더라고요. 마치 “이건 회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긴 한데, 말하면 좀 민망한데요?” 같은 분위기.
근데 진짜로 로그를 확인해보니, 예약을 건 시간대가 제가 출근 전에 찍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 계정으로 로그인된 기록은 없는데, 시스템은 제 이름으로 예약이 생성돼 있었어요. 더 웃긴 건 예약을 확정한 사람 칸이 비어 있는데, 그 칸에 제 부서명만 자동으로 따라붙어 있었다는 점이에요.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설정이었죠. 누가 장난을 친 거 같긴 한데, 장난 치려면 최소한 “누구”는 알아야 하는데 시스템이 제 흔적만 정교하게 붙여놨으니까요.
그때부터 의심이 두 가지로 갈렸습니다. 첫째는 회사 내부 ‘기계적인 자동화’예요. 가끔 회의실 예약이 특정 패턴이면 자동으로 이름을 채워 넣는 기능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거든요. 둘째는 사람 문제죠. “내 이름으로 예약”은 생각보다 쉬워요. 캘린더 공유 권한이 설정돼 있거나, 누가 제 계정을 장난 삼아 쓰는 순간, 이름이 그대로 들어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 계정 보안부터 확인했어요. 비밀번호는 바꿨고, 로그인 기록도 뒤졌고, 2단계 인증도 다시 걸었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 제 책상 위에 누가 올려둔 메모가 하나 보였어요. 메모지엔 글씨가 제 필체랑 꽤 비슷하게 써 있었는데, 내용은 딱 “회의실 키 카드 반납 위치 변경”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설마” 했죠. 왜냐면 키 카드 반납 장소가 지난주에 바뀌었는데, 그걸 제가 메일로 안내받았거든요. 그런데 메모는 누가 제 책상에 올려뒀는지 알 수 없었고, 필체가 비슷하다는 게 더 문제였습니다. 누가 저를 흉내 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정말 제 손글씨가 맞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팀 전체 메신저에 아주 조용히 물어봤습니다. “혹시 오늘 회의실 예약 잡힌 거 누가 했는지 아시나요? 제 이름으로 세 번 겹쳐있어서요.” 그랬더니 한두 명은 “난 그런 거 없는데?” 하고 넘어갔고, 한 명은 “아, 그거… 아침에 회의실에서 누가 ‘이름만 바꾸면 돼요’라고 하더라”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한 마디가 제 심장을 딱 치고 지나갔습니다. ‘이름만 바꾸면 돼요’라니, 누군가 예약 화면에서 이름만 빠르게 바꾸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거든요.
결국 회의실 담당자와 같이 원인을 찾았는데, 결론이 좀 어이없었습니다. 예약 시스템이 회의실 사용 신청을 받으면 임시로 “마지막으로 시스템에서 입력한 이름”을 자동 채우는 버그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마지막 입력이 누구였냐면… 회의실 옆 안내 데스크에 붙어있는 공용 PC에서 누가 입력한 제 이름이었어요. 그 PC는 회의실 키 반납 기록도 같이 처리하는데, 누군가 아침에 키를 반납하면서 “이름 칸”을 자동 완성으로 선택해버린 거죠.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이 제 이름으로 회의실 예약을 생성해버렸고, 담당자 입장에서는 “예약자만 내 계정처럼 보이는” 상태가 된 겁니다.
문제는 제가 아니라 시스템이었는데, 시스템 문제라면서 왜 제 이름이 그렇게 딱 맞춰 들어가 있냐고요. 담당자가 보여준 로그를 보니, 임시 생성된 예약은 실제 예약 담당자 승인 단계에서 수정이 가능했는데 그걸 누군가 깜빡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제 이름으로 승인까지 올라가 버린 거죠. 저는 그 자리에서 “제가 뭘 잘못했나”가 아니라 “제가 왜 피해를 보게 됐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예약을 취소하려고 했더니 이미 회의실 앞 스티커도 출력돼 있었고, 회의실 사용자는 “이미 시작된 회의”로 알고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요청했어요. “공용 PC 자동 완성 기능 좀 꺼주세요. 아니면 예약 생성 단계에서 최소한 ‘예약 요청자 확인’ 창이라도 띄워주세요.” 담당자는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경고 메일을 ‘예약자’인 당신 이름으로 보냈는데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그제야 아차 싶었죠. 제 이름으로 예약이 잡힌 날, 저한테는 아무도 메시지를 안 보냈는데도 시스템이 먼저 저를 ‘책임자’로 분류해버렸던 거예요.
그날 오후에 회의실 담당자가 캘린더에서 제 예약을 전부 지우면서, 농담처럼 “앞으로는 예약이 잡혀도 놀라지 마세요. 가끔 회사가 당신을 너무 신뢰해서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감동이었어요. 회사가 저를 신뢰한 건지, 아니면 공용 PC가 제 이름을 너무 좋아하는 건지… 어쨌든 다음날부터 예약은 안 잡혔고, 대신 공용 PC 자동완성은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저도 드디어 마음 놓고 달력 앱을 볼 수 있게 됐죠. 그래도 아직 가끔 회의실 앞 스티커를 보면, 제 이름이 보일까 봐 눈이 먼저 한 번 움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