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담벼락에 새겨진 날짜와 이름들
며칠 전부터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 근처 담벼락에 이상한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한 거다. 딱히 누가 목격한 것도 아니고, 주변에 공사나 그런 흔적도 전혀 없는데 어느 날 보니까 날짜랑 이름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오래된 담벼락에 누군가 장난친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날짜가 너무 어이없게 과거부터 최근까지 이어져 있어서 이상했다. 심지어 그 이름들이 동네나 가족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 같았다.
가장 오래된 날짜는 1983년이었는데, 그날 적힌 이름은 우리 할아버지 이름과 똑같았다. 그 다음 해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진 날짜마다 한두 개씩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최근 날짜에는 내 친구 이름도 있었다.
처음엔 누가 물리적으로 그걸 새긴 줄 알았다. 하지만 담벼락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도구로 파낸 흔적이 아니라 마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부식된 부분처럼 보였다. 마치 날짜와 이름이 자연적으로 새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네 어르신들께 여쭤보니, 한결같이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면서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몇몇 이웃은 그 담벼락 근처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고, 일부는 아예 밤에 지나가길 꺼려했다.
내가 직접 이름들을 확인한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떤 날짜 옆에는 '최현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건 3개월 전에 돌연히 사라진 우리 마을 청년의 이름이었다. 그의 행방불명 사건과 날짜가 딱 맞아떨어졌다.
더 무서운 건, 이름들 옆에 가끔씩 작은 문장들도 함께 있었다는 거다. ‘기억하라’, ‘돌아가지 마라’, ‘그날처럼’ 같은 기묘한 문구들이었는데, 누가 쓴 건지 알 수 없었다.
밤에 담벼락 근처를 지나가다 보면, 이름들이 희미하게 빛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바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가장 소름 돋는 순간은, 어젯밤 내가 담벼락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내 이름과 오늘 날짜가 새겨진 걸 봤을 때였다.
할머니는 “그건 이 집과 이 마을에 얽힌 오래된 저주일지 몰라”라며 조심하라고 했다. 누구도 그 담벼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이 이상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아직도 그 담벼락이 내 눈앞에 선명한데, 가끔씩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담벼락엔 미래 날짜도 적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다음 달, 내 이름과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