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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트렁크에 넣은 물건이 비 오는 날 젖어버림

2026-08-14 20:41:10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은 이유가 딱 하나 있어요. “설마 내가 비 맞을 리가 있나?” 하고 마음 놓는 순간, 차 트렁크가 먼저 젖어버립니다. 저도 그날은 참 멀쩡할 줄 알았거든요. 비는 창문 밖에서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저는 트렁크에 급하게 물건을 넣고 차를 세우는 타이밍이었어요.

문제의 시작은 사소했어요. 집에 있는 장마철 생필품이랑, 대충 행사 준비물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것들을 모아서 트렁크에 쟁여뒀죠. 방수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방수팩은 어디론가 “언젠가 필요하겠지” 하면서 다른 서랍으로 이사 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비닐봉투 두 겹에 담고, 뚜껑 닫듯이 트렁크를 닫았습니다.

당시엔 비가 별로 세지 않았어요. 빗방울 소리도 ‘톡, 톡’ 정도였고, 저는 “설마 트렁크까지 물이 들어오겠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죠. 차에 들어가 시동 걸고 출발하기 직전, 트렁크 쪽을 한 번도 안 봤습니다. 그게 진짜 탈이었어요. 사람은 중요한 걸 안 보면 운이 좋고, 운이 좋으면 다음 문제도 안 봅니다. 제가 딱 그 코스였거든요.

조금 달리다 보니 길이 반짝거리고, 물이 튀는 소리가 커지더라고요. 비가 차선을 타고 흐르면서 바닥에서 튀는 물이 트렁크 후면에 고이기 시작하는 그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운전할 땐 그런 걸 ‘느낌’으로만 알지, 실제로 확인할 생각은 못 해요. 저는 목적지까지 음악 들으면서, “조금만 더 가면 끝” 이러고 갔습니다.

도착하고 나서야 트렁크를 열었는데요, 첫눈에 이상했어요. 비닐봉투 바깥이 약간 늘어져 있었고, 무언가가 눌려서 물을 머금은 것처럼 반짝였거든요. 그때부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 오늘 비가 좀 많이 오는 날이었나?’ 같은 후회가 올라오더니, 바로 ‘아냐, 내가 넣은 물건이 혹시 젖었나?’로 결론이 바뀌었죠.

비닐봉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봉투 바닥에서 물이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하고요.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더 기분이 나빴습니다. 물건이 젖어버린 걸 알면 그냥 “어쩔 수 없지” 하면 되는데, 그 ‘증거’가 너무 정확해서 더 열받더라고요. 방수팩을 안 쓴 제 선택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났달까요.

젖은 걸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범위가 넓었습니다. 비닐봉투에 담았는데도 안쪽이 약간 눅눅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종이류는 모서리가 말끔히 젖어 있었어요. 특히 각진 박스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물이 닿은 흔적이 마치 지도 같았어요. “여기가 길이었고, 여기가 수로였고…” 이런 느낌으로요. 저는 그걸 보면서, 트렁크가 단순한 수납공간이 아니라 작은 수조였던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젖은 걸 바로 닦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손이 안 움직입니다. 왜냐면 “일단 나중에”라는 인간의 기본 옵션이 켜져버리거든요. 저는 먼저 다른 일부터 처리했고, 트렁크는 나중에 정리하자고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다시 열었더니, 이번엔 냄새가 올라오더라고요. 비 젖은 냄새 + 비닐봉투 냄새 + 아직 마르지 않은 뭔가의 합이요. 그 냄새 맡는 순간, 아까의 소리가 다시 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트렁크 바닥을 휴지로 닦고, 마른 천으로 문질러보고, 물기가 있는 부분은 햇빛 드는 쪽으로 차를 옮기고, 비닐봉투는 전부 새로 정리했어요. 그 과정에서 느낀 건 하나예요. 비 오는 날에는 트렁크에 넣는 물건이 아니라, 제 자신이 먼저 방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날 이후로는 물건 넣을 때마다 “이게 비 오면 정말 안전해?”를 한 번 더 묻습니다. 대답은 거의 항상 “아니”입니다만요.

그리고 제일 웃긴 건, 며칠 뒤에 비가 오지 않던 날 트렁크를 열다가 “설마 방수팩이 없을 리가 있나?” 하고 서랍을 뒤졌는데… 방수팩이 거기 있더라고요. 제가 못 찾았던 게 아니라, 제가 찾을 마음이 없었던 거였죠. 결국 결론은 이거예요. 차 트렁크에 넣은 물건이 비 오는 날 젖어버린 게 아니라, 저는 방수팩을 못 찾는 운명에 먼저 젖었습니다. 다음 번엔 젖기 전에 찾겠습니다… 라고 또 생각하겠죠, 아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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