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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초기, 문자보다 통화가 더 어색하던 날

2026-08-16 05:41:11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연애 시작하고 한 3주쯤 됐을 때, 우리는 문자로는 꽤 잘 맞췄어요. 아침에 “오늘 점심 뭐 먹을지 고민 중” 같은 말 보내면 상대도 “나도 고민. 너는 국밥파?” 이렇게 바로바로 받아주고, 대화가 끊기지 않으니까 저도 은근히 자신감이 붙었죠.

근데 문제는 통화였어요.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상대가 “우리 전화 한 번 해볼까?”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좋지”라고는 했는데, 막상 버튼 누르는 순간부터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어요. 문자는 생각하고 고르면 되는데, 통화는 말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공기가 다 들어맞아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부담이었습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상대가 “야, 들려?”라고 했는데, 저는 너무 급해서 “응, 들려!”를 한 박자 늦게 말해버렸어요. 상대도 미세하게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오케이, 그럼 뭐 하지?”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진짜로 ‘뭐 하지?’인지, 아니면 서로 어색함을 덮기 위한 안전벨트인지 헷갈리는데, 저는 안전벨트를 못 찾은 상태였어요.

저는 대화 주제를 떠올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통화만 시작하면 모든 머리가 ‘재부팅 중’으로 바뀌는 느낌이에요. 급한 마음에 “너 요즘 뭐해?”라고 물었더니, 상대가 또 성실하게 “응, 낮에 운동하고 저녁엔 드라마 봐. 너는?” 이러는 거예요. 순간 저는 “지금 드라마 제목 뭐였지”를 말하려다가, 정작 제가 본 드라마가 아니라 어제 친구가 추천해준 걸 떠올리게 됐고요.

그래서 결국 저는 “나… 나 요즘은…” 하면서 말을 끊었는데, 상대가 “왜 갑자기 정적이야”라고 물었어요. 그 정적을 제가 만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그냥 생각이 많아”라고 했더니, 상대가 잠깐 웃고 “생각 많은 거면 나랑 통화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듣는 순간, 제가 방금 한 말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생각’이라는 단어가 제 인생을 대신 말해버린 느낌이었어요.

다시 주제를 잡으려고 “근데 너가 좋아하는 거 있잖아, 그거 뭐더라”라고 했는데, 여기서부터 완전 무너졌어요. 상대는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되물으며 “맛집? 아니면 취미?”라고 물었고, 저는 “아… 취미!”라고 확신 없이 대답했죠. 그런데 상대가 “취미가 뭐였더라, 너도 기억 잘하네”라고 농담처럼 말하니까, 그 농담이 오히려 저를 더 당황시키더라고요. 통화의 문제는, 말 한 번 잘못하면 계속 이어진다는 거예요. 문자는 잘못 보내도 삭제라도 하잖아요.

결국 저는 “미안, 내가 지금 좀 멍해. 다음에 더 잘할게”라고 말했어요. 근데 상대가 “괜찮아, 나도 처음엔 이래. 문자로는 괜찮은데 통화는… 진짜 동물처럼 눈치 봐”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저는 웃음이 나왔고, 상대도 그 웃음을 듣고 같이 웃었어요. 어색한 게 사라졌다기보다, 어색함을 같이 공유하는 순간이 생기니까 그게 생각보다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날 통화는 사실 길지 않았어요. 한 10분쯤? 근데 끊고 나서 제가 제일 신기했던 건, 통화 중에 서로를 설득하려고 했던 시간들이 다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게 아니라 그냥 서로의 속도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단 거예요. 다음 날 문자로 “어제 전화 어색했지?”라고 물어봤더니 상대는 “응, 근데 그 어색함이 귀여워서 기억 남는다”라고 답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에 또 한 번 심장이 덜컥했죠. 어색함이 귀여움이 될 수 있다니, 세상 참 공정하지 않다 싶었지만… 또 그게 연애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통화가 이상하게 진행됐던 이유는 간단해요. 저희는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었는데, 통화는 그걸 빨리 처리하라고 압박하는 시험 같았던 거죠. 결국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멈췄을 때 다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이기는 시험이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통화하면 여전히 말이 꼬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상대가 먼저 “나 방금 또 동물 모드였지?”라고 웃어줘서, 저도 따라 웃게 됩니다. 통화는 여전히 어려운데, 적어도 그 어려움이 우리 사이에선 장난이 되는 날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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