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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단톡방에서 ‘읽씹’이 제일 큰 죄

2026-08-17 10:41:10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가족 단톡방에 새해 인사 올리면 뭐합니까. 저는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줄 던지고 스르륵 나오는 편인데, 그날따라 제일 먼저 시작된 전쟁이 있더라고요. 제목부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누가 뭐라고 했냐면, “읽씹이 제일 큰 죄”라는 말을 단톡방 상단에 붙여놨는데… 그게 제 얘기 같아서요.

상황은 이랬어요. 어머니가 “오늘 저녁에 국 끓여 먹으려는데, 너희 집엔 뭐 해줄까?”라고 물으셨고, 저는 손이 좀 바빠서 “엄마 맛있게 해 드세요!”까지만 보내고 바로 다른 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답장이 없으니, 이게 신기하게도 그 뒤로 어머니 메시지가 이어지더라고요. “얘가 보긴 봤네.” “읽기만 하고 안 누르네.” “읽씹은 죄야.”

처음엔 설마 싶었는데, 그 뒤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단톡방에 쓰신 말이 걸작이었어요. “읽씹 하는 사람은 나중에 효도도 ‘읽’고만 한다.” 이 문장이 웃기면서도 무섭더라고요. 제가 효도하려고 마음 먹어도, 이미 단톡방 레이더에 걸려서 ‘효도 읽기 전용 모드’로 판정받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더니 누나가 갑자기 진지해졌습니다. 누나가 “엄마가 물어보면 최소한 ‘네’라도 해야지”라고 했는데, 여기서 더 웃긴 건 제가 ‘네’라고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다만 제 손가락이 바빠서…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자꾸 “나중에 답할게”를 습관처럼 썼던 거예요. 근데 가족 단톡방은 ‘나중에’가 없습니다. 그냥 ‘지금 읽었으면 지금 책임져’ 같은 룰이 있더라고요.

그날 저녁, 저는 마음을 다잡고 답을 하려고 했습니다. “엄마 국 좋아요! 우리 집은 그냥 간단히 먹을게요.” 이렇게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죠. 근데 문제는 타이밍이었어요. 이미 어머니가 “읽씹은 죄”를 두 번이나 강조한 뒤였고, 아버지는 그 사이에 “봐도 답 안 하는 건 죄다”를 추가했습니다. 제 메시지가 도착하자마자, 단톡방에 딱 한 문장이 또 떴습니다. “아들, 지금 죄를 고백하네.”

제가 그때 깨달았습니다. 가족 단톡방에서는 답장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게 ‘보았다는 흔적’이더라고요. 읽음 표시가 찍히는 순간, 저는 이미 재판정에 앉아 있는 겁니다. 변명할 시간도 없고, 항변도 없고, 그냥 판결문부터 받는 느낌이랄까요. “피고는 읽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피고는 추후 답장을 보냈으나, 늦었다.” 이게 뭐 법정 드라마도 아니고요.

더 황당한 건, 제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단톡방을 확인했더니, 어머니가 전날 메시지 캡처를 올려놨더라고요. “이게 제일 큰 죄예요. 읽기만 하고 안 누르는 거.” 캡처 속에는 제가 보낸 말풍선이 있고, 그 아래에 아무 답도 없는 제 침묵이 길게 떠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잠깐 멍해졌는데, 솔직히 말하면 제 손이 고장 난 건지, 마음이 고장 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뒤로 저는 전략을 바꿨어요. 무조건 답장을 늦게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애초에 읽지 않기로 했습니다. 단톡방을 아예 안 들어가면 죄가 성립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하루만에 실패했습니다. 장 보러 가려면 어머니가 보내는 시간표가 필요하거든요. 결국 저는 들어갔고, 들어가는 순간 읽음이 찍혔고… 어머니는 그 짧은 시간을 또 근거로 삼았습니다. “또 봤네. 또 죄네.”

결국 제가 선택한 건, 진짜로 답을 ‘짧게라도’ 보내는 겁니다. 국 끓여준다고 하면 “네!” 하나, 어디 가냐고 하면 “알겠어요!” 하나, 그냥 이모지도 아니고 글자라도. 그러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누나도 갑자기 기분이 풀리는 것 같더라고요. 읽씹이라는 죄가 사라지면, 가족은 다시 평온해집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죄를 막는 건 거창한 효도도 아니고, 매번 말 한두 글자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단톡방을 보면 약간 웃깁니다. 가족들은 제게 자꾸 “읽씹이 제일 큰 죄”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이제 그 말이 무섭기보단… 좀 고맙게 느껴져요. 왜냐면 제가 바쁘다고 침묵하면, 그 침묵을 죄로 규정해가며 결국 대화를 다시 붙여주니까요. 오늘도 단톡방에 메시지 하나 뜨면, 저는 더 이상 ‘나중에’는 안 씁니다. 그냥 읽는 순간 바로 한 글자를 보내요. 저도 가족도, 다 그렇게 살아야 편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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