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면서 처음 해본 ‘분리수거’ 전쟁
자취 시작하고 제일 먼저 한 게 “나 혼자 살면 생활이 편하겠지?”라는 희망회로였는데, 첫 달부터 제 발목 잡은 게 분리수거였습니다. 특히 제가 분리수거를 ‘분리’하는 게 아니라 ‘재난을 수습’하는 느낌으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부터 제 자취방이 전쟁터가 되더라구요.
처음에는 그냥 대충 버리면 되겠지 싶어서, 페트랑 캔이랑 종이를 비슷한 통에 넣었습니다. 문제는 통이 하나였다는 거죠. 동네에서 받은 안내문도 대충 넘겼고요. 그러다 어느 날 관리사무소에서 “재활용품 분류 협조 부탁드립니다” 같은 문구가 붙어 있는데, 그 글씨가 유독 제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분리수거를 ‘게임’이 아니라 ‘미션’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처음엔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페트병 라벨 떼야 해요?” “컵라면 용기 재활용 되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검색 결과가 죄다 확신이 없는 글들뿐이더라고요. 어떤 글은 “헹궈서 넣으면 된다” 하고, 어떤 글은 “종량제 아니냐” 하고, 또 어떤 글은 “지역마다 달라서 관리사무소에 물어봐라”라고 끝나요.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상식 문제가 아니라 지역별 퀘스트의 총집합이라는 걸요.
그래서 다음 날, 저는 분리수거 통을 세 개로 늘렸습니다. 아니, 늘린 게 아니라 ‘세 개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과감히 구매했죠. 투명 페트, 캔, 종이…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세상이 정리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활은 늘 예상과 다르게 굴러가잖아요. 하루 만에 멸치 포장지, 소스 스티커 붙은 컵, 비닐 코팅된 종이, 알쏭달쏭한 종이컵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통 앞에서 한참을 서 있게 됐습니다.
특히 제일 무서운 건 “이게 종이야? 비닐이야?” 같은 애매한 것들이었어요. 가끔은 겉보기엔 종이인데 안쪽이 코팅된 것들이 있어서, 저는 휴대폰을 들고 확대해서 보기까지 했습니다. 그 와중에 “분류 기준에 맞춰 깨끗이 배출”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실은 배달 음식이 잔뜩 묻은 상태로 집에 오면 바로 전쟁이 시작되는 거예요. 저는 라면 국물 묻은 용기를 흔들었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고, 다시 닦고, 다시 분리하려다 “나 왜 이걸 하고 있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파트 앞 분리수거장에서 ‘실전’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동네 분들이 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다들 마치 훈련받은 사람처럼 정확하더라고요. 저는 반대로 제 손이 제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캔은 캔 통에 넣었는데, 라벨은 떼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그냥 같이 넣었고, 페트는 헹군다고 했는데 속에 남은 물이 뚝뚝 떨어져서 주변을 잠깐 민폐로 만들었죠. 그 순간 관리사무소 안내문이 다시 떠올랐고, 저는 오늘도 수습은 실패라는 자막을 머릿속에 깔았습니다.
결국 저는 “분리수거를 잘하겠다”에서 “분리수거를 덜 실패하겠다”로 목표를 바꿨어요. 처음엔 과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감으로 판단하는 단계가 오더라구요. 예를 들어, 딱딱한 건 플라스틱일 가능성이 높고, 반짝이는 건 코팅일 확률이 높고, 종이처럼 보이지만 찢어지기 어려운 건 뭔가 섞여 있을 수 있고… 물론 이게 정확하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제 멘탈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버릴 때 고민이 줄수록 제 삶의 평화가 늘어난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진짜 웃긴 건, 시간이 지나면서 분리수거가 ‘전쟁’이 아니라 ‘루틴’이 됐다는 겁니다. 처음엔 분리 통 앞에서 30분씩 서 있던 제가, 어느 날은 그냥 눈 감고도 넣는 수준이 됐더라고요. 물론 아직도 100% 확신 못 하는 품목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그 애매한 것들을 보면 “아, 이건 아직 학습이 덜 됐구나” 하고 조용히 인정하게 됐습니다. 분리수거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계속 배우는 게임이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오늘도 저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분리수거장에 가면서, 스스로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합니다. “다음엔 더 깔끔하게 하자”가 아니라 “일단 버리는 순간, 내가 이미 노력 중인 거다.” 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덜 헤매고 덜 민폐 끼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제 자취방이 전쟁이 아니라… 그냥 생활의 일부로 조용히 굴러가겠죠. 아마 그때가 되면 분리수거장이 아니라 제 인생이 분리될지도 모릅니다. 기분은요, 오늘도 조금은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