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 직전, 상대가 먼저 말문 연 사소한 이유
첫 키스 직전, 상대가 먼저 말문 연 사소한 이유가 지금도 생각나. 그날은 진짜로 “이제 된다” 싶은 분위기였거든. 카페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서로 한 발자국씩 더 다가가고, 말은 줄고 숨소리만 커지던 그런 순간. 근데 신기하게도, 키스하기 딱 직전이 되니까 상대가 갑자기 말을 시작했어. 나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했지. “왜 지금 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얼굴 표정으로 튀어나오기도 전에, 상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주 사소한 걸 지적하는 거야.
상대가 말문을 연 첫 문장은 이거였어. “잠깐만, 너 오늘 립밤 바른 거 아니지?” 이런 거. 나는 그 질문이 왜 키스 직전 타이밍에 튀어나오는지 이해가 안 됐어. 왜냐면 내 입술에는 립밤 같은 게 묻어 있을 리가 없거든. 오히려 나도 그 순간에 긴장해서 입술을 자꾸 깨물고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한 거지. 근데 상대는 진지하게 말하더라. 입술 모양이 ‘윤기’가 있어서 확인하고 싶었다는 거야.
난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올 뻔했어. 근데 웃으면 분위기 깨질 것 같아서 참았지. 대신 “아니, 안 발랐어”라고 대답했는데, 상대는 그제야 한 번 더 가까이 와서 내 얼굴을 유심히 봐. 마치 과학 실험하듯이. 그리고는 “그럼 다행”이라고 말하고 다시 숨을 가다듬더니, 이제야 고개를 조금 기울이더라고. 솔직히 그때 내 뇌는 이미 ‘키스’가 아니라 ‘감정 노동’ 쪽으로 흘러가 있었어. 어떻게든 상대가 원하는 확신을 만들어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그 다음부터가 더 웃겼어. 상대는 키스하려고 다가오면서 또 잠깐 멈추더니, “너 방금 입술 깨물었지?”라고 물어. 아니, 내가 입술 깨무는 건 습관이 있긴 해. 근데 그걸 지금 왜 관찰하고 있냐고. 나는 어이없어서 “들켰어?”라고만 하고 말았는데,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이 살짝 따끔해 보이거든. 오늘은 조심하자”라고 했어. 이때부터 나는 깨달았지. 저 사람이 지금 하는 말은 ‘고백’이나 ‘무드’가 아니라, 철저히 ‘안전 점검’이었다는 걸.
그래서 키스가 늦어진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어. 첫 번째는, 상대가 감각이 엄청 예민해서 내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 두 번째는, 내가 생각보다 분위기를 타서 무작정 직진할까 봐, 상대가 일부러 자기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는 거. 그리고 세 번째는, 그 말들이 사실은 긴장을 숨기기 위한 기술이었을지도 몰라. 사람마다 “지금 너무 좋다”를 말로 못 하면, 대신 엉뚱한 사소한 걸로 브레이크를 거는 경우가 있잖아. 상대는 키스 직전의 떨림을 “입술 립밤/깨물었는지” 같은 주제로 돌려서 받아내고 있었던 거야.
문제는, 난 그 사소함이 계속 이어질 줄은 몰랐다는 거지. 상대가 입술 상태를 확인한 다음엔, 내 셔츠 칼라를 한 번 쓱 보더니 “너 오늘 목에 향수 많이 뿌렸어?”라고 묻는 거야. 나는 또 “아니, 그냥 샀을 때 몇 번”이라고 얼버무렸고, 상대는 “그럼 괜찮아. 너무 세면 숨이 가쁘니까”라고 말했어. 와… 이 사람은 키스할 때도 ‘농도 조절’을 하고 있구나 싶더라. 나 혼자 감정 폭주하는 동안, 상대는 상대대로 환경을 세팅하고 있는 느낌이었지.
근데 결국 그 뒤에 키스는 정말로 왔어. 상대가 “자, 이제”라고 말하자마자, 입술이 닿는 순간이 딱 정리되듯 이어졌거든. 그때 느낀 건, 아까의 말들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말이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긴장을 ‘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바꾼 거지. 그래서 키스가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느낌. 오히려 내가 “어? 왜 말해?”라고 당황했던 그 몇 초가, 상대에겐 “지금부터 조심스럽게 시작하자”라는 준비 시간으로 쓰인 것 같더라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그때 이야기를 했더니, 상대가 말하더라. “너 키스하기 전에 갑자기 입술에 뭔가 묻어 있으면 어떡하지 싶었어. 그리고 너는 긴장하면 더 세게 깨물잖아. 아프면 안 되니까 확인한 거야.”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리고 네가 너무 급하게 들어오면 내가 겁먹을까 봐, 내가 먼저 말로 시간을 벌어야 했어.” 이 말 듣고는 그냥 멍해졌다. 사소한 이유가 사실은 배려였던 거지. 나는 그날 “말문을 왜 열었나”만 생각했는데, 상대는 “상대가 다칠까 봐 어떻게든 조정”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지금도 나는 첫 키스 직전의 그 사소한 질문들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 립밤이니 향수니, 그런 거 결국엔 다 핑계처럼 보이잖아. 근데 그 핑계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더 빨리 다가가다가 서로의 리듬을 놓쳤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결론은 이거야. 키스가 늦어진 게 아니라, 사랑이 정확하게 맞춰진 거라고. 다음에 누가 분위기 타서 “지금 키스해도 돼?” 같은 말 꺼내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 “잠깐만, 오늘 립밤은 아니지? 그리고 입술은 깨무는 거 맞지? 그거 확인하고 가자.” 그 말 한마디로도 세상은 피식 웃기고, 관계는 더 단단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