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준 반찬, 냉동실에서 발견한 과거
엄마가 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도 마음이 안 놓여서, 결국 그날 저녁 냉동실 문을 열었다. “저거 또 뭐야…?” 싶은 마음으로 뒤적이는데, 냉동실 한가운데에 반짝이는 투명 용기가 눈에 띄었다. 날짜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글씨가 흐려서 정확히는 안 보였고, 대신 엄마 필체로 ‘먹어라’ 같은 느낌만 아주 또렷했다.
용기를 꺼내는 순간 냉동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뚜껑은 생각보다 단단히 붙어 있었고, 억지로 비틀다 보니 뚜껑 아래로 성에가 쫙 퍼졌다. 그때 안에서 뭔가가 살짝 새어 나올 듯 말 듯 했는데, 냄새가 먼저 튀어나왔다. 처음엔 “아, 이건 익숙한 김치/장조림 계열인데?” 싶다가도, 그 다음엔 왠지 모르게 이상하게 오래된 기억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엄마는 원래 ‘남는 건 없게’ 스타일이셨다. 냉장고에 있는 걸 먹기 좋게 나눠서 얼려두고, 또 냉장실 한 칸이 비면 거기에 뭘 채워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반찬을 받았을 때 이미 한 번 먹을 타이밍을 놓쳤다는 거였다. 엄마가 준 건 분명 “이건 괜찮아, 금방 데워 먹으면 돼”였는데, 나는 그 말을 대충 믿고는 다른 반찬을 먹느라 미뤘다.
용기에는 ‘멸치볶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근데 그 멸치볶음은… 멸치가 멸치답지 않았다. 얼어붙은 상태에서 한 조각씩 톡톡 부서지는데, 간장색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종이처럼 누렇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설마 상했겠어?” 하고 젓가락을 가져가려는 찰나, 문득 생각이 났다. 작년에 엄마가 “너 그때 멸치 알레르기 있었잖아”라고 하신 적이 있었지. 나는 그때의 ‘있었던가?’를 떠올리며, 냉동실 안이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다시 닫고, 냉동실 뒤쪽을 더 뒤졌다. 그러다가 결국 또 다른 용기가 나왔다. 이건 ‘소불고기’라고 써 있었는데, 글씨가 더 크게 “절대 버리지 마”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엄마가 쓰신 문장들은 대체로 다 “절대”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엔 ‘버리지 마’ 뒤에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고, 그게 너무 신경 쓰여서 자세히 봤다. “너 초등 때”라는 말이 보이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초등 때? 그때 나는 학교에서 급식이랑 집 반찬이랑 매일 부딪히던 시기였다. 나는 반찬을 먹는 걸 싫어했는데, 엄마는 싫어하는 걸 알아도 계속 만들어주셨다. 그때 엄마가 내 앞에서 “이거 냉동실에 넣으면 맛이 더 좋아져”라고 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때는 내가 반찬을 안 먹어서 엄마가 직접 얼려두고 다음에 몰아서 먹이려 했던 거구나. 그리고 난 그 다음을 깜빡하고, 엄마 혼자 “다음엔 먹겠지”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내가 이런 걸 깨닫는 순간부터 마음이 되게 찜찜해진다는 거다. 음식이 상했다/안 상했다는 문제를 떠나서, 엄마의 시간과 고생이 내 기억 한편에서 밀려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일단 냉동실 문을 닫고,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반찬 냉동실에 오래된 거 있더라. 이거 혹시 언제 만든 거야?”라고 물었더니, 엄마는 잠깐 정적 후에 웃으시면서 “어, 너 초등 때? 그때는 내가 급식 때문에 네가 예민해서, 그냥 얼려놨지” 하시더라.
그 말 듣고 나니까 진짜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걸 모르고 성인이 돼서도 ‘엄마 반찬’만 받으면 자동으로 “아, 이건 꺼내서 데워 먹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내가 잊을 때마다 냉동실을 타임캡슐로 쓰고 있었던 거다. 엄마가 계속 얼려두는 동안, 나는 계속 ‘다음에 먹지’만 외치며 살았고. 결국 냉동실에서 발견한 건 음식이 아니라… 내가 미뤄온 기억의 조각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뻔했다. 그 용기들은 맛을 보기 전에 내가 이미 마음으로 넘겨버렸다. 냄새도 이상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절대 버리지 마”라고 적어둔 걸 내가 지금 버릴 용기가 나는 건 웃긴 일이지만,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니까 과감히 정리했다. 대신 나는 엄마가 다음에 또 반찬 보내주실 때는, ‘냉장고에 공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근데… 엄마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 내가 결국 냉동실을 열어보는 사람이라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냉동실을 열 때마다 약간의 공포와 약간의 웃음을 동시에 느낀다. 공포는 “혹시 또 내가 어릴 때부터 미뤄온 게 있나?”이고, 웃음은 “엄마는 지금도 나한테 먹을 미래를 얼려서 저장해두고 계실 듯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여운은 이거였다. 어쩌면 엄마가 주는 반찬은 맛보다도,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걸 천천히 데워주려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