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다가 ‘소소한 선물’ 때문에 크게 싸운 날
연애하다가 ‘소소한 선물’ 때문에 크게 싸운 날이 있어. 문제는 선물이 작았다는 게 아니라, 그날 내 마음이 너무 크게 반응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평소 같았으면 “아 고마워~” 하고 끝났을 일인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어라? 이게 맞나?”가 머릿속에 꽂히면서 대화가 아니라 심문이 돼버렸지.
그날 우리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로 첫 인사부터 어색했어. 나는 이미 하루 종일 피곤해서, “그래도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만 있으면 분위기가 풀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상대가 쇼핑백을 내밀더니 “이거, 소소하게 준비했어”라고 말하더라. 작은 수건 세트랑, 받으면 기분 좋은 종류의 간식이었어. 솔직히 나도 고맙긴 했어. 근데… 고맙다는 감정이 입에서 나오기 전에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삐걱거렸지.
나는 그 선물을 보자마자 “왜 굳이 이런 걸 사왔어?”라고 툭 던졌어. 말투가 좀 차가웠는지 상대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라. 상대는 “기념일도 아닌데, 그냥 네가 요즘 좀 피곤해 보이길래… 어차피 매일 쓰는 거라서”라고 설명했어.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아니 기념일이 아니면 더더욱 왜 굳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었지. 그 논리의 정체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뭔가가 ‘나를 배려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나를 관리한다’는 느낌으로 들려서, 기분이 상한 거야.
상대는 내가 선물을 안고 있자마자 “너가 요즘 말도 좀 적고, 표정도 그렇잖아. 그래서”라고 한 번 더 말했어. 그때부터 내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올랐어. 나는 “그럼 나는 원래 이렇게 살고 있던 거 아니야? 왜 갑자기 너만 나를 보면서 판단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거든. 그리고 그 말이 너무 커져버려서, 우리는 거실 한복판에서 서로 말의 크기만 키우는 상황이 돼버렸어. 선물을 사이에 두고 ‘고마움’과 ‘불편함’이 싸우는 기묘한 전쟁이 시작된 거지.
상대는 “내가 뭘 잘못했어?”라고 물었고, 나는 “잘못한 게 아니라, 방식이 별로야”라고 했어. 그러자 상대가 “소소한 선물도 별로야?”라고 되받아쳤고, 그 말에 나는 또 이상하게 발끈했어. 사실 내가 싫었던 건 선물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이렇게 하면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방식이었는데, 그걸 말로는 못하겠더라. 그래서 계속 더 엇나갔어. “선물 받는다고 내가 갑자기 달라질 거 같아?” 같은 말까지 나왔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완전 상처 주는 말이잖아.
결국 우리는 부엌에서 말다툼하다가 결국 각자 방으로 들어갔어. 나는 이불 덮고 멍하게 있다가도 계속 생각했지. ‘소소한 선물’이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그러다 상대가 쇼핑백에서 꺼낸 영수증을 보고 떠올랐어. 영수증엔 딱 그날 결제 시간이 적혀 있었거든. 내가 그날 퇴근하고 “오늘은 좀 늦을 듯”이라고만 말했는데, 상대가 그걸 듣고 급하게 준비한 거였어. 그러면 그건 관리가 아니라… 걱정이잖아. 그런데 왜 나는 그 걱정을 “통제”로 번역해버린 걸까.
한 시간쯤 지나서 상대가 먼저 문자를 보내더라. “나 아까 말하면서 너한테 상처 주고 싶었던 건 아닌데, 내가 보기엔 넌 너무 지쳐 보여서 그랬어. 소소한 거라도 네가 웃으면 좋겠어서 준비했어.” 그 문자를 읽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급히 식지 않고 천천히 내려앉더라.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어. 나도 누군가가 내 마음을 챙겨준다는 걸 원하면서, 동시에 그게 ‘관심’이 아니라 ‘평가’가 된다고 느끼면 못 견디는 사람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내 성격이 문제였는데, 선물을 핑계로 상대를 밀어낸 거지.
다음 날 저녁에 다시 마주 앉았어. 나는 먼저 “어제 내가 선물 보고 바로 화낸 거 미안해”라고 말했어. 상대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고마워. 근데 너는 내가 뭘 하든 좀 조심스럽게 반응하는 느낌이 있어서, 나도 답답했어”라고 하더라. 우리는 그제서야 ‘소소함’이 문제가 아니라, 소소함을 해석하는 우리 마음의 방향이 문제였다는 걸 공감했어. 난 “나는 기념일 같은 큰 이벤트가 아니면 덜 중요하게 느끼나 봐”라고 말했고, 상대는 “나는 네가 작게라도 웃었으면 해서 준비한 건데, 넌 그게 부담일 수 있단 걸 몰랐어”라고 했지.
그리고 그날 이후로 우리는 소소한 선물에 룰을 하나 만들었어. 큰 건 아니어도 괜찮고, 대신 “이건 네가 특별히 뭘 잘해서 받는 거”가 아니라 “그냥 오늘의 컨디션을 위해 준비한 거”라고 말해주기로 한 거야. 말 한 줄이면 충분한데, 왜 우리는 어제는 서로 말 없이 표정으로 싸웠을까 싶더라.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해. 두 사람이 다 사랑하는데, 쇼핑백 하나가 감정의 번역기처럼 오작동해서 대형 사고처럼 번진 거잖아. 그날 이후로는… 소소한 선물이 와도, 먼저 마음부터 읽어보자고 서로 약속했어. 결국 큰 싸움의 결론은 항상 같더라. “선물은 작아도, 말은 크게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