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유머/짤방 유머 추천 0

엄마가 보내준 과일이 아니라 ‘진짜 이유’

2026-08-26 15:41:11 조회 15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엄마가 “과일 좀 먹어, 택배로 보냈어!”라고 하시더니, 며칠 뒤에 정말 상자가 도착했어요. 박스에 스티커 붙어 있고, 종이 완충재 사이로 사과랑 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죠. 솔직히 그 순간엔 마음이 좀 녹았어요. 요즘 잘 안 연락하긴 했어도, 엄마는 엄마니까요.

근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과일 꺼내고 냉장고 정리하는데, 상자 밑바닥에 작은 봉투 하나가 더 남아 있더라고요. “이건 그냥 버리지 말고 봐”라고 메모가 적혀 있었고, 봉투 안에는 영수증이랑 프린트물이 같이 들어 있었어요. 영수증엔 ‘과일’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프린트물에는 제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뭐지, 개인정보 유출인가?’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프린트물은 한 장짜리였는데 제목이 “최근 생활 습관 체크”였어요. 거기에 제가 최근 한 달 동안 편의점에서 뭘 샀는지, 배달 주문이 얼마나 잦았는지, 그리고 “야식 빈도” 같은 항목이 있더라구요. 어… 엄마가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저는 그런 거 캡처한 적도 없는데요.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되게 태연하게 말하셨어요. “아이고, 과일값만 보낸다고 생각했어? 너 건강 챙기는 건 기본이지.” 그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저는 “엄마, 근데 그 프린트물은 어디서 본 거예요?”라고 물었고, 엄마는 한 박자 쉬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가 다 알아. 너 네가 안 알려줘도 엄마는 알지.”

그때 깨달았어요. 이 과일은 ‘맛있게 먹으라고’가 아니라 ‘설득용’이구나. 엄마가 원래 말 잘 안 하시는 스타일인데, 지금은 제가 너무 오래 끓인 라면 국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가 봐요. 밤에 늦게 먹고, 과일은커녕 물도 자주 안 마시고, 운동은 ‘언젠가’ 예약만 해두는 그 루틴이요. 엄마는 그걸 과일로 막으려는 게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열어보려는 거였죠.

그렇다고 엄마가 과일값을 줄이려는 것도 아니었어요. 봉투 안에는 작은 종이도 하나 더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과 1개 = 물 1병 챙기기” “귤 3개 = 산책 20분” 이런 식으로 규칙이 있더라구요. 저는 웃다가도 약간 어이없어서 “엄마, 이거 게임이야?” 했더니, 엄마가 “게임 맞지. 네가 재밌어야 오래 하잖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진짜 웃긴 건, 다음 날부터 일이 벌어진 거예요. 제가 과일은 맛있게 먹고 있었거든요. 근데 엄마가 또 카톡을 하더니, “오늘은 물 몇 병?”이라고 묻는 거예요. 저는 “아… 그냥 먹고 있었지, 내가 물 몇 병인지 어떻게 알아”라고 했죠. 그랬더니 엄마가 “네 컵이 있잖아. 그 컵이 몇 번 비었는지 엄마는 봐. 너 자취방이 아니라, 엄마 관찰소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 듣고 한동안 말이 안 나왔어요.

그래도 결국 인정하게 되더라구요. 엄마가 프린트물로 저를 감시하려는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변명할 틈을 없애려는 방식이 이거였던 거죠. 과일은 맛있고, 규칙은 웃기고, 연락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제 생활이 좀 달라졌어요. 저는 과일 먹고 물도 챙기고, 산책도 가끔 하게 됐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진짜 이유’는 과일이 아니라, 제가 다시 제 몸을 챙기기 시작하게 만드는 장치였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뭐라고 답장을 보냈냐면요. “엄마, 다음엔 과일 말고 ‘관찰일지’ 말고 그냥 마음 보내줘도 돼”라고 했어요. 그러자 엄마가 한참 있다가 “마음은 보내지. 근데 너는 마음이 도착할 때까지 과일이랑 같이 냉장고에 넣어야 빨리 먹더라”라고 답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 과일은 냉장고에, 마음은 마음대로, 그리고 저의 변화는 엄마가 정해준 ‘보관법’대로 굴러가고 있었던 거죠. 다음 상자에는 또 뭐가 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엔 봉투부터 열어보게 될 것 같아요.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