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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예약 걸어놓고 잠수한 내가 찐 피해자

2026-08-27 05:41:11 조회 19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당근 예약 걸어놓고 잠수한 내가 찐 피해자다? 네, 제목부터 좀 억울하죠. 근데 진짜로 억울한 게 아니라, 제가 억울해질 만한 사연이 너무 정교하게 쌓여서 “아니 이건 내 잘못만은 아니잖아”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상황은 이랬어요. 저는 동네에서 자전거를 내놓으려다가, 필요 없어진 헬멧이랑 간단한 보호대 세트를 한 번에 정리하려고 했죠. 가격도 나름 합리적으로 올렸고, 거래 시간은 딱 오늘 오후로 맞춰놨어요. “예약 주세요” 이런 문구까지 달았거든요. 뭐, 그때까진 제가 피해자 프레임을 쓰게 될 줄 몰랐죠.

문제는 구매자분이 나타난 순간부터 시작됐어요. 당근에서 연락이 오더니, “세트 상태 괜찮나요? 오늘 몇 시쯤 가능해요?” 이러는 겁니다. 저는 친절하게 사진도 다시 보내고, 사용감도 설명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러면 오후 6시에 문 앞에서 뵐게요” 했더니, 구매자분이 바로 예약 걸어두겠다고 하더라고요.

예약 걸어놓고 한참 후, 저는 별생각 없이 기다렸습니다. 오후 6시가 되면 문 앞에서 만날 수 있으니, 그 시간에 맞춰서 집을 비울 일도 미뤘어요. 저도 직장인이니까 그냥 기다리면 되지 뭐… 하고 마치 제가 먼저 약속 잡은 사람인 것처럼 마음이 바짝 정리돼 있었죠. 근데 그 정리된 마음이 곧바로 깨졌습니다.

오후 6시 10분쯤? 연락이 없습니다. 6시 20분쯤? 채팅에는 “곧 도착할게요” 한 줄만 덜렁 남아 있었어요. 저는 그 한 줄을 믿었고, 믿은 제가 나빴냐고요? 아니요, 그 한 줄이 너무 사람 마음을 착하게 만드는 문장이라서요. 그래서 저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차라리 “지금 사정이 생겨서 늦어져요”라고 말해주면 이해라도 했는데, 텀이 계속 늘어나더라고요.

6시 40분이 되자, 그제야 제가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도착할게요”가 아니라 “도착할지 모름”의 세계관이구나. 연락을 한 번 더 해봤는데, 답장이 없어요. 예약 상태는 그대로인데, 사람은 사라졌고, 시간만 지나갔어요. 저는 그때부터 진짜로 화가 났어요. 당근 거래가 이렇게까지 무책임하게 끊기는지 처음 경험한 거라 더 괴롭더라고요.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제 피해의 시작인데, 진짜 웃긴 건 그 다음이에요. 다음날 아침에 당근 알림이 와요. 구매자분이 저한테 “어제 못 만나서 죄송합니다” 같은 메시지를 보낸 거죠. 아니, 어제 못 만난 게 죄송할 일이라면 왜 예약을 걸어놓고 잠수를 탔을까요? 저는 그 메시지를 보고 하품이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었어요. 저는 답장을 보내서, 거래 의사가 있으면 미리 말씀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터졌습니다. 구매자분이 “저도 그 시간에 기다렸어요. 근데 판매자님이 연락이 늦어서요” 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연락을 안 한 적이 있나요?” 싶었는데, 사실 여기서 제가 한 가지를 깜빡했어요. 채팅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제가 중간에 답장을 한 번 놓쳤던 순간이 있었던 겁니다. 아주 짧게요. 딱 그 짧은 타이밍이 그분에겐 오래된 인내로 기억됐나 봐요. 그 말을 들으니까 저는 또 억울해졌습니다. 아니, 예약 걸어놓고 잠수하신 쪽이 ‘판매자 연락이 늦었다’는 논리로 정리하면, 그게 피해자 코스프레지… 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다시 자세히 따져봤어요. 예약 시간은 제가 잡은 게 맞는데, 그분이 “곧 도착”을 말한 뒤로는 제 연락이 어떤 상태였든 간에, 결국 제 앞에 안 나타난 건 그쪽이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끝까지 “제가 기다린 시간도 있어요”를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할 말은 하나였어요. 저는 헬멧을 들고 문 앞에 사람이 오는 걸 기다린 시간도 있는데요? 사실 저도 한 번 놓친 답장이 있지만, 그렇다고 예약을 그냥 잊어버리는 건 다른 문제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서로 기분만 상한 상태로 거래는 끝났고, 저는 판매글도 다시 올려야 했어요. 그 와중에 당근 알림이 또 뜨더라고요. “다음 거래를 위해 조금 더 신속하게 답변해주세요” 같은 문구요. 웃긴 게, 제가 당근에서 “피해자”가 되려면 신속하게 답장만 보내면 되는 구조인가 봅니다. 저는 그 문구를 보고 진짜 웃겨서, 한참을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어요. 내가 피해자라기보다, 내가 시스템에 의해 ‘피해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결국 찐 피해자는 누구였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저는 오늘도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다음엔 예약 걸어두고 잠수하는 대신, 제 마음부터 먼저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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