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집에서 냉장고 소리로 잠 깨는 밤
자취집에서 냉장고 소리로 잠 깨는 밤, 그날도 별일 없을 줄 알았죠. 저녁에 라면 끓이고 물 한 컵 더 마시고, 유튜브 10분만 보고 잔다고 다짐했는데… 냉장고가 “똑, 똑, 똑” 하더니 갑자기 리듬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문제는 그 소리가 제 귀에만 들리는 게 아니라는 거였어요. 방 안 공기 전체가 그 박자에 맞춰 흔들리는 느낌!
처음엔 그냥 냉장고가 주기적으로 도는 소리겠지, 하고 눈 감았거든요. 그런데 자취방이 원래 조용하잖아요. 세탁기 도는 소리도, 옆집 발소리도, 가끔씩 지나가는 차 소리도 다 희미해요. 그래서 냉장고 소리는… 마치 작고 집요한 경비원이 제 잠을 순찰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자, 지금이 깰 시간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17분. 저는 1초 만에 “왜 지금까지는 안 울다가 하필 이 시간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취하면서 느낀 건데, 전자제품은 타이밍이 항상 감정선이랑 비슷해요. 배달앱으로 짜증 내고 있을 때 고장 안 나고, 마음 편할 때 고장 나고, 잠 잘 때 딱 깨게 굴죠. 냉장고도 제 감정선을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일단 한 번만 확인해보자 싶어서 문을 열었는데, 냉기가 딱! 하고 얼굴을 때리더라고요. 가슴이 갑자기 좁아지는 느낌. 음식들은 멀쩡했어요. 김치통도 잘 있고, 소주도 안전하게 제자리에 있고, 어제 사 온 요구르트도 반듯하게 서 있더군요. 근데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냉장고를 보고 있어도 냉장고는 “아니, 너 말고 다른 걸 확인해야 해” 같은 표정으로 계속 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러다 깨달았죠. 냉장고 내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냉장고 뒷쪽 혹은 아래에서 나는 소리 같았어요. 자취방은 가구가 빽빽해서, 냉장고 뒤를 제대로 볼 수가 없잖아요. 저는 그 좁은 공간을 “모험의 던전”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손을 넣어보면 먼지가 한 번에 덮칠 것 같고, 괜히 손이 낀 다음에 더 큰 일이 생길 것 같고… 그래서 계획을 바꿨어요. ‘오늘은 관찰만 한다’는 거죠. 이게 자취의 교양이니까요.
소리는 계속 “똑, 똑, 똑” 하다가 “우웅” 하고 낮아지더니, 다시 “딱” 하고 튀는 느낌으로 반복됐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냉장고가 뭔가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제가 모르는 암호를 입력하는 것처럼 들리기 시작했어요. 마치 “지금 잠들면 안 돼요” 같은 문장을 소리로 출력하는 느낌. 그러면 전 해야죠. 잠을 다시 자려는데, 몸은 이미 각성해서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한 행동은 딱 하나였어요.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냉장고 앞에 쭈그려 앉아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는 겁니다. 물론 실제로 해결되진 않아요. 하지만 이상하게 그 행동을 하면 마음이 좀 놓이더라고요. ‘적어도 지금 난 포기하지 않았다’는 느낌? 그런데 문제는, 제가 찾는 동안 소리가 더 또렷해졌다는 거예요. 제가 집중하자 냉장고도 저를 보고 “아, 잘 찾아왔네” 하는 것처럼 더 열심히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냉장고와 눈싸움을 한 사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멀쩡한 척하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냉장고가 어젯밤에 내게 했던 말이 그냥 소음이 아니라, 경고였던 것처럼요.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설명서부터 찾아봤습니다. 자취생의 가장 현실적인 감동은 “설명서에 답이 있다”가 아니라 “설명서가 생각보다 짧다”예요. 그리고 결론은 대부분이 비슷하죠. 컴프레서가 돌아가는 소리, 온도 조절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소리, 문을 오래 열어둔 뒤 자동 조절… 어제 제가 라면 먹고 냉장고 문을 좀 오래 열었던 것 같긴 합니다. 제가 범인이 맞는 거죠. 근데 왜 범인이 나인데, 죄책감은 냉장고가 주는 느낌일까요.
그날 밤은 또 오더라고요. 물론 어제처럼 “똑, 똑, 똑”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가끔씩 “딱”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저는 습관처럼 이불 속에서 반응합니다. 잠에서 깨기 전의 저를 생각하면 좀 웃기죠. 냉장고가 울면 내가 벌떡 일어나서 미션을 수행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밤의 진짜 교훈은 이거였어요. 자취집은 작아서 소리가 크게 들리고, 냉장고는 그 안에서 유일하게 밤을 책임지는 존재라는 것. 그러니까 어젯밤에 깼던 제가 좀 부끄럽지만, 동시에 든든했어요. 내 잠을 지켜주는 건… 냉장고가 아니라, 결국 제가 또 버텼다는 거니까요. 다음엔 소리 나도 그냥 “응, 잘 돌아가” 하고 웃고 잘게요. 어차피 자취는 혼자 버티는 게 아니라, 장비랑 같이 사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