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단체구매 하다 내가 담당자가 됨
회사에서 단체구매 하다 내가 담당자가 됨. 말 그대로 “누가 좀 해줘”가 돌고 돌아서 결국 내 이름이 적힌 것처럼 느껴진 그날이 있었어요. 정확히는 월요일 아침, 단체로 사무용품이랑 간식 세트, 그리고 연말에나 쓸까 말까 한 포장용 테이프까지 한 번에 정리하자는 공지가 떴거든요. 문제는 그 공지 맨 아래에, 친절하게도 “진행은 아무나 맡아주세요”라는 문장이 붙어있었다는 거…
처음엔 다들 가볍게 웃었어요. “어차피 엑셀 하나 만들면 되지” “이번엔 내가 아니어도 됨” 이런 말이 오가더니, 오후쯤 되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이 저한테 옮겨가더라고요. 저는 그냥 조용히 커피나 타 마시며 “저는 맡을 생각 없는데요” 같은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오히려 ‘잘 알겠다’로 해석된 건지… 팀장님이 제 옆자리로 오시더니 “너 원래 정리 잘하잖아. 그럼 너가 해봐”라고 하시잖아요. 그 한 마디가 끝이었어요. 바로 담당자 확정.
담당자가 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게 뭐냐고요? 저는 당연히 ‘뭘 사야 하는지’부터 정리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먼저 카톡방에 사람들이 주문 요청을 막 던지기 시작했어요. “저 종이컵 100개요” “마우스패드도 있으면” “혹시 텀블러는 단가 더 싸요?” 그러다 보니 제가 가져야 할 건 물품 리스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아니, 사람들의 개별 취향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취향이 다들 “급하게” “이번 주 안에” “가능하면 오늘” 같은 단어를 달고 와요.
그래서 저는 엑셀을 켰습니다. 엑셀을 켜는 순간부터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물품명, 수량, 단가, 합계, 비고… 열을 늘리는데도 모자라더라고요. 어떤 분은 “정확히 몇 개가 필요한지 모르겠는데 일단 1세트로”라고 쓰고, 어떤 분은 “이전 구매 때 그걸로요”라고 해서 저는 이전 구매 내역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 구매 내역은… 팀장님 PC에만 있었어요. 그걸 찾으러 가는 길이 제일 멍청하고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었어요. 마치 비밀 문서를 열람하러 가는 느낌.
결국 물품 리스트는 어느 정도 정리됐고, 이제는 업체를 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대충 단가 비교만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여기서 또 함정이 있어요. 단체구매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누군가는 “배송비 무료면 그게 제일 싸죠?”라고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그래도 품질이 더 중요해요”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가격표가 아니라 철학이 붙습니다. 저는 가격과 품질 사이에서 줄타기 하듯 견적을 모았고, 결론은 “중간 정도의 업체 + 배송비 감안 + 가능한 품질”로 합의 봤어요. 합의가 끝났다고요? 아니요, 합의 다음이 시작이었습니다.
결제가 제일 골치 아팠어요. 단체구매는 돈이 ‘한 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카드 내고 누군가가 나중에 정산하고, 그 누군가는 또 “제가 이번 달에 조금 늦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그래서 저는 계산기를 두드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누가 늦으면 어떡하지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특히 가장 골치였던 건 ‘정산 방식’. 팀에서는 계좌이체로 가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렀는데, 어떤 분은 “카드로 받으면 더 편해요”라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제가 상품권으로 하면 안 돼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정산은 그냥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리듬을 조정하는 작업이라는 걸요.
그래서 저는 공지를 하나 올렸습니다. “입금 마감은 금요일 4시까지, 이후 입금은 다음 회차로 처리합니다”라고요. 공지 올리고 나서 3분이 지나자마자 댓글이 달렸어요. “금요일 4시… 저는 4시 10분에 들어갈 것 같아요 ㅠ” “저는 금요일 오전까지만 가능해요” “혹시 현금영수증 처리는 어떻게 되나요?”… 사람들은 공지를 읽고도 계속 질문을 붙입니다. 그 질문들이 또 전부 ‘정답이 있는 질문’이라 제가 답을 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주말에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주말 오전에 결재 내역이랑 영수증 요청 양식을 미리 만들어놨어요. 담당자라서요. 담당자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물품이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다들 상자 개봉하고 “어 생각보다 잘 왔다” “이거 색감 마음에 드네” 같은 말을 하면서 만족해하더라고요. 심지어 어떤 분은 제게 “고생했어요. 덕분에 편했어요”라고 말해주는데, 그 말이 그렇게 오래 기억날 줄은 몰랐어요. 저는 그 순간 아, 이게 단체구매의 결말이구나 싶었죠.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귀찮음을 처리해주는 사람’을 사는 거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 귀찮음을 떠안은 사람이었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담당자가 된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겨요. 팀장님이 “너 정리 잘하잖아”라고 하시던 그 한 마디가, 사실은 저를 칭찬한 게 아니라 “아무도 안 하니까 네가 해”라는 뜻이었더라고요. 물론 제가 나중에 다음 회차는 누가 맡아주면 좋겠다고 슬쩍 던졌더니, 다들 또 “아니 그건…” 하면서 저를 보고 조용해지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카톡방에 공지 뜨는 걸 보면, 제 손이 먼저 커피를 향해 가요. 그때 제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이번엔 내가 담당자가 아니라… 그냥 구경만 하자.” 그런데 그 말이 제일 어려운 날이 있더라니까요. 담당자라는 건, 한 번 걸리면 참 끈질기게 달라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