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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도착 알림만 보고 문을 안 연 날

2026-09-01 15:41:09 조회 1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배달 도착 알림만 보고 문을 안 연 날, 그날 나는 참 단단한 사람처럼 살았다고 생각했어. 정확히는 “대충 도착하면 끝”이라고 머릿속에서 결론 내린 뒤, 내가 문을 열지 않아도 뭔가 자동으로 해결될 줄 알았지. 알림만 오면 세상이 굴러가더라… 라고 믿기엔 세상이 너무 현실적이었어.

그날 주문한 건 평범한 치킨이었어.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휴대폰 보는데, 알림이 딱 떠. “배달 도착”이라고. 순간 나는 왜인지 모르게 안심했어. 원래 배달 기사님들이 문 앞에 두고 가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예전에 나도 밤 늦게 시켜서 그런 식으로 받은 적이 있어서 더 그랬지.

그래서 나는 문 쪽으로 한 발도 안 움직였어. 대신 침대에 앉아서 유튜브 틀어놓고, 알림을 다시 확인하느라 화면을 몇 번 더 켰다. “도착”이면 끝, “완료”가 오겠지, 이런 식으로. 나는 정말로 배달 앱이 내 생활 리듬을 존중해줄 거라고 착각한 셈이었어.

근데 5분, 10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없더라. 이상하게도 앱에는 아직 “배달 중” 표시가 남아 있었고, 지도에는 배달원이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 나는 그때야 살짝 불안해졌지. 근데 또 한편으로는 “아, 기사님이 사진만 찍고 가시나 보네” 같은 낙관을 붙잡았어.

그래도 불안해서 창문 쪽 커튼만 살짝 들춰봤는데, 아무도 없었어. 문 앞에도 택배처럼 “대기 중” 안내문 같은 건 없고, 바람만 지나갔지. 그래서 나는 다시 휴대폰을 보다가, 그 순간 알림을 하나 더 받았어. “부재중입니다. 연락 주세요” 이 문장이 뜨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멍청하게 낙관했는지 딱 그 한 줄로 정리가 되더라.

바로 전화하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이미 통화도 안 받는 모드였어. 통화 버튼 누르면 “지금은 연결할 수 없습니다” 뜨고, 문자도 읽음 표시가 없더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는데, 문제는 내가 문을 안 연 게 핵심이라 “내 잘못”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야. 이런 건 변명이 길어지면 더 티가 나잖아.

결국 나는 앱에서 재배달/환불 옵션을 눌러보려고 했어. 근데 여기서 또 어이없는 게 나왔지. 내가 처음에 고른 옵션이 “문 앞 비대면”이었는데, 기사님이 그걸 실행하려다 내 문 앞에 둘 수가 없었던 거야. 정확히는 “문 열어달라는 요청을 안 봤을 가능성”이 커 보였고, 나는 그럴듯하게 배달원이 상황을 더 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가정했더라. 현실은 그런 식으로 친절하지 않더라고.

결국 한참 뒤에 기사님이 다시 연락이 왔고, 나는 얼떨결에 목소리가 작아졌어. “아니요 제가 방금 알림만 보고…” 같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는데, 그 대신 “제가 문을… 잠깐 확인을 늦게 했습니다”라고 얼버무렸지. 그 말 하고 나니까, 상대가 들었을 내 표정이 상상이 되더라. 아마 기사님은 ‘이 집은 알림만 먹고 사나?’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다행히 치킨은 다시 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나는 배달 알림을 받으면 무조건 일어나게 됐어. 알림을 믿는 것과 문을 여는 건 다른 문제더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엔 도착했는데도 아무 일도 없을 수 있는 구간이 있다는 걸 배웠지. 마지막으로 문 앞에 놓인 치킨 상자를 받으면서도, 내 손이 “감사합니다”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제가 잘못했습니다”를 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어.

그날 이후로도 나는 가끔 배달 알림을 보면서 웃긴 생각을 해. 배달 앱은 “도착”이라고 말해주는데, 나는 “도착하면 내가 이미 다 받은 거지!”라고 믿어버렸으니까. 결론적으로 배달 기사님이 한 일을 나는 안 했고, 대신 나는 문 앞 대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한 셈이 됐어. 치킨은 결국 왔지만, 내 자존심이 먼저 도착했고 뒤늦게 확인한 건 내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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