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모르는 규칙이 있더라
회사에서 진짜 이상한 건,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직원들끼리 “아, 그거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지” 같은 눈빛을 교환한다는 거였어요. 근데 그 눈빛의 대상이 늘 저더라고요. 어느 날부턴가 회의실 문 앞에서 서 있으면 누가 꼭 제 옆을 지나가면서 “여기는 조용히 들어오는 데 익숙해져야 해요”라고 말하는데, 그게 농담인지 규칙인지가 애매했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저는 그냥 일정 확인하고, 보고서 열고, 커피 한 잔 들고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매일 아침마다 사내 메신저로 ‘공유’가 올라오는데, 그 공유의 내용이 아니라 첨부 파일 이름이나 말투를 보고 사람들이 분위기를 맞추더라고요. 저는 파일 이름을 대충 “월간보고_최종본_v3” 이런 식으로 저장했는데, 한 번 그렇게 하고 나서부터 다들 저를 볼 때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그 다음 주엔 제가 회의 시작 2분 전에 들어갔어요. 보통은 늦으면 죄책감 들고, 너무 빨라도 뭔가 어색하니까 “적당히”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들어가자마자 팀장님이 고개만 들고는 곧바로 노트북을 닫더라고요. 그날 회의가 갑자기 짧게 끝났고, 후속 공유는 “다음 주에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로 퉁 쳐졌습니다. 알고 보니 여기엔 회의 시작 5분 전 입장뿐 아니라, 3분 전엔 복도에서 한 번 멈추고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게 있더라고요. 그걸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다들 진지합니다.
또 하나는 캘린더 규칙이에요. 저는 일정에 그냥 회의명을 적고 참석자 넣고 끝냈는데, 어떤 날은 제가 “업무 조율 회의”라고 써 둔 걸 누가 보자마자 지우더라고요. 그리고 옆에 “조율”이 아니라 “정렬”이라고 써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어보니 “그 단어가 사람 마음을 정렬해요”라고 말하는데… 그게 무슨 심리학인지 회사 내 공인 인증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날부터 캘린더를 종교서적처럼 쓰게 됐습니다.
그러다 제일 충격이었던 건 점심 자리 규칙이었어요. 저는 점심시간에 그냥 사람이 덜한 데로 가서 앉으면 되겠지 했는데, 어떤 날은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옆 사람이 갑자기 웃음을 참고 기침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긴 오늘 예약석이에요”라고 말하는데, 예약석이란 단어가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진짜 예약이 되어 있는 건가 싶었죠. 알고 보니 예약은 회의실 예약처럼 시스템에 남는 게 아니라, 사람들 눈빛과 머리 끄덕임으로 진행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예약을 받은 적이 없어서 계속 눈치를 봤고요.
심지어 커피도 규칙이 있더라고요. 저는 아침에 자동머신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뽑아 마시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직원들이 제가 커피 뽑는 걸 보면 잠깐 멈춰요. 멈추는 이유가 “맛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원두를 뽑기 전 교반 버튼을 누르는 횟수가 다르기 때문이었어요. 한 번은 제가 귀찮아서 “그냥 한 번만 누르지” 했는데, 다음 날부터 제 책상 옆에 원두 설명서가 얌전히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가져다 놓는지 모르겠지만, 설명서 표지에 딱 한 줄이 적혀 있더라고요. “기계는 존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건, 규칙이 있다는 걸 제가 제일 늦게 알아차렸다는 점이에요. 어느 날 야근 끝나고 정리하려고 프린터 앞에 섰는데, 직원 한 명이 제 손이 프린터 버튼 쪽으로 가는 걸 보고 얼른 손을 막더라고요. “그거 누르지 마세요”라고요. 저는 “왜요? 인쇄 취소하려는 건데…”라고 말했더니, 그 직원이 한동안 저를 보다가 “취소는… 그 버튼으로 하는 게 아니라, 퇴근 전에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라고 진지하게 답하는 겁니다. 그때는 웃고 싶었는데,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같이 웃으면 제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어요.
결국 저는 그 모든 규칙을 한 번에 이해하려고 사내 게시판을 훑었는데, 정작 정리된 문서는 없더라고요. 대신 “다들 아는 얘기”라는 제목의 글들이 잔뜩 있었어요. 글마다 결론이 비슷했어요. “처음엔 몰라도 괜찮아요. 하지만 모르는 척하면 더 오래 갑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지, 아니면 그냥 따라 할지 매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요즘은 그냥 팀원들 눈빛을 먼저 읽어요. 눈빛이 “아, 여기서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걸 알려주니까요.
가끔은 제가 그 규칙들을 다 배우고도, 어디서 또 하나를 놓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조용히 저를 스쳐 지나가며 제 옆에서 커피를 만든다거나, 캘린더 문구를 수정한다거나, 복도에서 멈추는 걸 시범처럼 보여주고 가요. 저는 그때마다 깨닫습니다. 회사는 시스템이 아니라 감각으로 돌아가는 곳이라고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감각을 배우고 나면, 일이 더 빨리 끝나요. 결국 규칙을 아는 게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웃는지를 아는 게 제일 중요했던 거죠. 오늘도 저는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복도에서 멈추는 걸 한 번 해보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요. 괜히 저만 모르는 규칙으로 또 하루가 늘어날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