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내준 김치가 택배 박스에 퍼진 썰
엄마가 “김치 좀 먹어. 이번에 담근 거야” 하면서 택배로 보내준 걸 받았는데, 문제의 시작은 박스를 여는 그 순간부터였어. 박스가 뭔가… 살짝 젖어 있었거든. 솔직히 처음엔 “아, 날씨 때문에 그랬나 보다” 싶었는데, 그게 시작이었지.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테이프부터 뜯었어. 뜯는 소리도 뭔가 평소랑 다르게 들렸달까. 그리고 비닐 포장 냄새가 확 올라오는데, 그 냄새가 꼭 김치 냄새인데 ‘조금만’이 아니라 ‘전면전’ 느낌이었어. 나는 순간 멈칫했는데, 이미 손은 테이프를 다 뜯어버린 상태였고 되돌릴 방법이 없더라.
뚜껑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건 김치통이 아니라, 택배 박스 바닥에 퍼져 있는 붉은 얼룩이었어. “설마 흘린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붉은 얼룩이 단순히 한두 방울이 아니라, 마치 누가 지도를 그리듯 가장자리를 따라 번져 있더라. 그 와중에 작은 비닐 하나가 또 붙어 있어서, 그걸 떼는 순간 더 확 퍼질까 봐 손이 느려졌어.
엄마가 보낸 메모를 찾으려고 얼룩 위를 조심조심 피해서 종이를 꺼냈는데, 메모는 생각보다 멀쩡하더라. 그래서 더 이상했어. “흘린 사람이 엄마 맞나?” 싶은데, 엄마는 그런 데서 깔끔한 편이잖아. 오히려 메모에 “중간에 한 번 흔들렸을 수 있어. 그래도 맛은 그대로야”라고 적혀 있었어. 그 한 줄이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들었지. 흔들렸을 수 있다니, 내가 오늘 택배를 흔들어버린 것도 아니고…
나는 일단 김치통을 꺼내려고 안쪽을 봤는데, 김치통은 있었어. 뚜껑도 닫혀 있었고, 겉모양은 멀쩡해 보였는데, 문제는 “겉이 멀쩡한데 왜 박스가 이렇게 젖어 있지?”였어. 그래서 박스 안에 깔려 있던 신문지들을 하나씩 펴봤더니, 신문지 사이사이에 이미 김치 국물이 스며들어서 매운 향과 함께 붉은 물결이 퍼져 있었어. 진짜로 파도처럼.
여기서부터는 내가 김치 감정사라도 된 줄 알았어. 어디가 가장 많이 새었는지, 국물이 어느 방향으로 퍼졌는지, 내가 마치 범죄 현장을 복원하듯 살폈거든. 결론은 간단했어. “운송 중에 한 번 열렸거나, 아니면 김치통이 아주 살짝 기울었거나.” 근데 그 아주 살짝이 박스 전체를 ‘김치 존’으로 만들어버리더라. 택배기사님이 얼마나 세게 흔들었는지 상상도 안 됐어.
그 다음엔 처리 시간이 문제였지. 얼룩이 묻은 박스는 그냥 버리려고 했는데, 박스 안쪽 골판지에까지 냄새가 배어 있어서 쓰레기통에 넣는 순간 우리 집 전체가 ‘김치 창고’처럼 변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나는 청소를 시작했어. 휴지로 국물을 먼저 닦고, 물티슈로 한 번 닦고, 마지막으로 세제로 한 번 더. 그런데 신기하게도 닦을수록 더 선명해지는 게 있었어. “여기는 김치가 지나갔다”는 흔적이 자꾸 남아있는 거야. 사진 찍어두고 싶을 정도로.
엄마한테 바로 전화했지. “엄마, 김치 통은 멀쩡한데 왜 박스가… 김치 지도가 됐어?” 그랬더니 엄마가 아주 태연하게 말하더라. “아, 그거? 내가 담아 보냈을 때 이미 조금 묻어 있었어. 근데 맛은 괜찮잖아.” 그 말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였어. “맛은 괜찮겠지. 문제는 지금 내 코랑 집이 괜찮지 않아요.”
결국 새로 포장해서 냄새 덜 배게 다시 정리하고, 김치통은 씻지 않고 그대로 먹기 전에 그냥 잠깐 상태 확인했어. 놀랍게도 김치는 맛있더라. 아삭하고 신맛도 딱 맞고, 엄마 손맛이 그대로였어. 근데 문제는 그 이후였지. 그날 저녁까지 우리 집 공기 속에 김치 향이 계속 남아있어서, 누가 집에 오면 “여기… 누가 김치 만들었어?”라고 물어봤다. 나는 그때마다 말했어. “택배가 김치를… 배송했어요.”
아무튼 지금도 그 박스는 어딘가에 ‘증거물’처럼 남아 있어. 엄마는 다음에 또 보내겠다고 하시고, 나는 매번 포장해달라고 당부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기대하게 되더라. “이번엔 박스가 어디까지 김치 세계관을 펼칠까.” 그러다 웃긴 건, 김치 한 통이 집안 냄새까지 점령해놓고도 결국 맛은 최고였다는 거야. 결국 엄마는 또 정확히 해냈지. 퍼뜨리되, 맛은 남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