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갔는데 가게 사장님이 먼저 알아본 썰
배달 갔는데 가게 사장님이 먼저 알아본 썰이 있어요. 진짜 제가 “아, 저 사람 맞네” 싶게 딱 알아보시더라고요. 보통 배달 오면 “여기 맞나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러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시작부터 제 쪽에서 당황할 틈이 없었어요.
그날 저녁, 비가 살짝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는데 주문이 꽤 있어서 오토바이(저는 자전거 타요) 세워놓고 가게로 들어갔죠. 가게는 골목 안쪽에 있어서 찾는 데 1분 정도 걸렸고, 저는 휴대폰 화면에 뜬 주문 내역이랑 배달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여기 맞아” 하고 있는데, 안에서 사장님 목소리가 먼저 들리더라고요.
“어이, 너. 오늘도 그 배달 왔지?” 순간 저는 제가 누군지 상상도 못 하게 멍해졌습니다. 저는 배달하면 보통 모자에 마스크, 코트 같은 걸로 얼굴 가려서 다니는데, 사장님이 제 얼굴을 본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는 거지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조심스럽게 “네… 주문 건 맞는데요?”라고 했는데, 사장님은 더 당연한 표정으로 “그래그래. 너 어제도 여기 오지 않았어?”라고 하셨어요.
저는 어제도 같은 동네를 돌긴 했는데, 설마 가게마다 제가 한 번씩 들를 때마다 기억하시는 건가 싶었죠. 그래서 “어제요? 혹시 저 다른 기사랑 헷갈리신 거 아닐까요?”라고 묻자 사장님이 한 박자 쉬더니 “헷갈릴 수가 없지. 너 바구니에 뽀송한 장갑 냄새 같은 거 나.”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냐 싶어서 웃음이 먼저 나왔는데, 사장님은 태연하게 설명하더라고요. “다른 기사들은 장갑이 눌러붙어서 한 냄새 나는데, 너는 새 장갑 쓰면 그 특유의 뽀송한 비닐 냄새가 있어. 그리고 배달 오면 신호도 조용히 켜고, 문 열 때도 ‘툭’ 소리 나잖아. 그게 기억이 됐지.” 저는 그 말을 듣고 아, 이분은 제 얼굴보다 제 “생활 소음”을 기억하는 사람인가 싶었어요.
그 말이 너무 디테일해서 저는 그냥 “사장님… 오늘도 장갑 새 건데요” 하고 넘어가려다, 순간 그럼 오늘은 또 제가 알아보였다는 뜻 아니냐 싶어서 더 웃겼습니다. 사장님이 주문 확인도 안 하고 바로 포장된 봉투를 툭 갖다 주시는데, 저는 “주문 번호랑 이름 확인은…” 하고 말끝을 흐렸어요. 사장님이 “확인할 것도 없지. 너 오늘도 타이밍 맞춰서 오거든. 손님이 기다리기 전에 딱 들어와.”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여기 운명적으로 배달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포장을 받는 동안에도 사장님은 태연하게 이야기 이어가셨어요. “너 지난번에 여기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가게 문 앞까지 뛰어오지 않았어? 비 오면 그 버릇이 있어.” 저는 그 기억이 왜 제 머리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또 맞더라고요. 비 오는 날은 다들 빨리 뛰어가잖아요. 근데 그걸 사장님이 눈으로 보고 기억했다니, 그게 더 신기했어요. 저는 그제야 제가 여기 자주 오긴 했구나, 그리고 ‘배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 한 번 더 거치는 동선’ 정도로 보는 게 아니라 진짜로 한 사람처럼 보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봉투를 들고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셨어요. “근데 너, 다음부터 마스크 조금만 더 올려. 사진 찍히기 전에 안전하게 얼굴 가려.” 저는 순간 진짜로 무슨 촬영회라도 있는 줄 알았죠. 알고 보니 가게 앞에 CCTV가 있고, 동네에서 나름 사건(?)이 잦아서 “기사님도 안전하게”라는 뜻이었대요. 저는 그 말 듣고 괜히 감사해서 고개를 꾸벅 숙였고, 사장님도 “가라가라. 맛있게 먹고 일해라.” 하고는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셨어요.
나와서 결제 완료 누르고 나니까, 그제야 뒤통수가 뜨겁더라고요. 사장님이 제 얼굴을 알아본 게 아니라, 제 습관을 알아본 거라는 게 웃기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배달 기사 입장에서 매번 얼굴은 다 가려져 있으니 “나라는 존재는 그냥 동선일 뿐인가?”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근데 그날은 반대로, 누군가는 그 동선까지도 기억해주는 느낌이라 좀 기분이 이상하게 좋아졌어요.
그 이후로도 저는 그 가게에 갈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장갑 냄새(뽀송함) 신경 쓰고, 문 열 때 소리도 줄이려고 되게 조심하게 됐습니다. 뭐 거창한 건 아니지만, 결국 사장님은 제 ‘정체’가 아니라 제 ‘태도’를 기억하신 거더라고요. 다음에 또 가면 또 어떤 디테일로 알아보실지, 저도 이제 은근히 기대하게 되네요. 배달의 세계가 원래 그런 거였나 싶고요, 오늘도 저는 모자 눌러쓰고 조용히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