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오늘만”이 반복되면 생기는 일
회사에서 “오늘만”이 반복되면 생기는 일이 진짜로 따로 있더라. 처음엔 그냥 급한 일정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회의실에 잔뜩 굳어버린 마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 팀장님이 그 문장을 입에 달고 살면, 하루가 아니라 인생이 그렇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사건의 시작은 아주 평범했다. 월요일 아침, 팀장님이 “이번 건은 오늘만 늦게까지 하면 돼요. 진짜 오늘만이니까, 오늘만!” 이러는 거다. 다들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마음속으로 ‘오케이 오늘만 버티면 주말이겠지’라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똑같이 “오늘만”이 튀어나왔다. 더 웃긴 건, 그날은 월요일보다 더 당당하게 말한다는 거였다. 마치 오늘이 특별히 더 “오늘만”인 것처럼.
처음엔 다들 참고 견디는 분위기였다. “오늘만”이니까. 그런데 “오늘만”이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바뀐다. 처음엔 희망이 섞인 눈빛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오늘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경보가 울리는 얼굴이 된다. 회의 중에 팀장님이 슬쩍 입을 여는 순간, 다들 노트북을 덮는 손이 먼저 움직인다. 마치 공항 보안 검색처럼 무의식적으로.
그러다 보니 업무 방식도 이상해진다. 평소엔 “이번 주까지” 같은 표현을 쓰던 것들이, 어느 날부터는 전부 “오늘만”으로 치환된다. 기획안을 완성해야 하면 “오늘만” 리마인드, 보고서를 정리해야 하면 “오늘만” 수정, 고객 메일을 보내야 하면 “오늘만” 발송. 심지어 회의록 작성도 “오늘만” 하자고 하니까, 나중엔 내가 문서 만드는 사람인지, 시간 연장을 담당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오늘만” 뒤에는 항상 ‘추가’가 따라붙는다. “오늘만” 하면 된다고 하더니, 막상 그 끝에 가보면 “아, 그리고 그 전에 이것도 확인만”이 나오지. 처음엔 ‘확인’이라고 해서 짧을 줄 알았다. 근데 확인은 확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더라. 확인이 끝나면 또 확인, 확인이 끝나면 또 “오늘만”. 결국 하루가 아니라 한 달치가 밀려온 느낌이다.
또 하나 문제는, “오늘만”이 반복되면서 회식 문화가 바뀐다는 거다. 예전에는 “오늘만 야근”이면 그다음 날 마음 놓고 쉬는 게 공식처럼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회식도 “오늘만”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오늘만 회식 가볍게 한 잔만 하고, 내일부터는 진짜 정상 루틴”이라고 하더니 내일부터는 또 “오늘만”. 그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전설 같은 밈이 생긴다. “내일부터는 내 인생이지만, 팀장님 인생은 오늘만이다.” 같은 말들. 다들 웃지만 속은 이미 지쳐 있는 그 웃음.
그때부터 회사에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퇴근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귀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오늘을 버틸 수 있느냐’를 계산한다. “지금 그만하고 집 가면, 다음에 또 불러서 ‘오늘만’ 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거다. 출근할 때 커피를 마시면서도 이미 머릿속엔 퇴근 타이머가 돌아가고, 심지어 휴대폰 알림이 뜨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덜컥한다. 그 알림 내용이 뭐든, 일단 “오늘만”일 확률이 높으니까.
결국 누군가는 용기 내서 묻는다. “팀장님, 혹시 ‘오늘만’이 자주 나오면… 내일도 오늘만인 거 아닐까요?” 그 질문이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잠깐 멈춘다. 팀장님은 웃으면서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번 건은 진짜 오늘만이면 끝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동시에 알아듣는다. 아, 지금도 ‘오늘만’을 믿으면 안 되는구나. 하지만 또 한편으론, 믿지 않으면 우리가 더 빨리 무너질 것 같아서 결국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 찰나의 현실. 회사는 늘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설득하더라.
그 다음 주, 드디어 진짜로 “오늘만”이 끝나는 날이 온다. 오후 늦게까지 정리하고, 팀장님이 “자, 이제 이걸로 정리 끝. 다음부터는 정말 정상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다들 어이없게도 멍해진다. 우리는 축하받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게 아니라, 마치 시험이 끝난 학생처럼 ‘아, 진짜로 끝났어?’를 확인한다. 웃긴 건 그때야 비로소 깨닫는 거다. “오늘만”은 업무의 마침표가 아니라, 우리의 인내심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문장이라는 걸. 그래서 그날 퇴근길에 다들 조용히 한마디씩 한다. “내일은… 아마도… 오늘만은 아닐 거야.” 그리고 그 불안한 기대감이, 다음 주에도 또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