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다가 서로 말투가 닮아가는 순간
연애 시작하고 한 달쯤 됐을 때, 우리가 서로 말투가 닮아간다는 걸 진짜로 느꼈어요. 처음엔 제가 “너무 귀엽다” 같은 말 하면 상대가 웃으면서 받아치고, 상대가 “아냐, 괜찮아” 하면 저는 괜히 따라 하면서 “진짜 괜찮아?” 이렇게 되더라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습관이 아니라… 거의 합이 맞는 것처럼 흘러갔습니다.
처음 신호는 사소했어요. 카페에서 제가 메뉴 보다가 “이거 맛있대”라고 말했는데, 상대가 바로 옆에서 “맛있대”라고 똑같은 톤으로 말하는 거예요. 제가 “어? 너도 방금 그 말로 주문하려고 했어?” 물으니까 상대는 “아니, 그냥 자연스럽게 나왔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장난인가 싶었죠. 그냥 우연이겠지, 둘 다 말투가 비슷한 편이겠지, 이렇게 넘겼어요.
근데 두 번째 신호는 집에 와서 더 확실해졌습니다. 제가 냉장고 열고 반찬 찾다가 “이거 누구 먹고 또 안 치워뒀어”라고 툭 던졌거든요. 그랬더니 상대가 말없이 냉장고를 닫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거 누구… 또…” 하고 똑같은 억양으로 마무리하더라구요.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어”라고 웃었는데, 웃는 방식까지 제가 하던 웃음이랑 비슷해서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어요. 연애가 아니라 성대 복제라도 되는 줄.
그 다음부터는 대화가 이상하게 매끄러워졌어요. 예전엔 서로 말이 꼬이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같은 설명이 필요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같은 단어를 먼저 던졌어요. 예를 들면 제가 “너 오늘 컨디션… 좀” 하면 상대가 “좀 그래?”라고 바로 이어가는 식이죠. 처음엔 편해서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도 모르게 “좀 그래”라는 말을 습관처럼 써버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제 일상에서 들리던 제 말이 아니라 둘이 섞인 말이 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결정타는 싸울 때 나왔어요. 저는 싸우면 말이 길어지는 편인데, 상대는 말이 짧고 단정한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 “내 말 좀 들어봐”가 자동으로 나왔고, 상대는 “알겠어” 한 마디로 끝내려 했죠. 근데 어느 날부터는 제가 갑자기 “알겠어”를 쓰는 거예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제가 저한테도 놀랐어요. 진짜로요. 그리고 상대도 “알겠어”가 아니라 제가 쓰던 “근데 왜 그래” 톤으로 변하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둘 다 눈을 마주쳤는데, 그 표정이 완전 같았어요. ‘아, 우리 지금 서로 말투 갈아끼우는 중이네’ 같은 표정.
그날 집에 돌아와서 서로의 말투를 녹음해봤습니다. 그냥 호기심이었어요. “너 말할 때 습관이 뭐지?” 하다가 “우리 둘이 똑같이 말하고 있는 거 아니야?”가 돼버려서, 결국 휴대폰을 켜 놓고 자기 전까지 거의 다 녹음했어요. 결론은… 예상대로 충격이었죠. 상대가 저한테 했던 표현을 제 입에서 확인했고, 제가 상대에게 했던 표현을 상대 입에서 확인했어요. 사람은 원래 자기 말투를 유지하려고 하잖아요? 근데 연애는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방식으로 침투하더라구요. 마치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편하게 들리는 쪽”으로 자동 번역해주는 것처럼요.
그런데 웃긴 건, 닮아가는 게 단순히 말끝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상대가 저한테 “괜찮아, 천천히 해”라고 말할 때 제가 받는 느낌이 편안했거든요. 그걸 제가 저만의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빨리 끝내자”라고 재촉하는 쪽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천천히 해”가 나왔고, 상대도 그 말에 안정감을 느끼는 표정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말투가 닮아가면 감정도 닮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는 그냥 단어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방식까지 같이 학습하고 있던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진짜로 기가 막혔어요. 제가 상대가 늦게 퇴근한 날, 문득 “오늘 힘들었어?”라고 물었더니 상대가 “응… 근데 괜찮아”라고 말하더라구요. 그 문장 자체가 완전 제 말투였어요. 제가 전에 상대에게 하던 방식 그대로요. 상대는 저를 보면서 “너도 왜 그렇게 말해? 나 이상한 거 아니지?”라고 하길래, 저는 “아니,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라고 말하다가 멈췄어요. 왜냐면 제 뇌가 이미 결론을 알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닮아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제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조차 구분이 안 되는 상태.
그 이후로는 그냥 “닮아가는 거 맞다” 하고 포기했어요. 대신 서로를 놀릴 때도 규칙을 정했습니다. “말투 복사 금지!”라고 장난치면서도, 중요한 순간엔 상대가 편하게 느끼는 말로만 돌아오려고 해요. 가끔은 거울처럼 맞춰져서 웃기기도 하고요. 근데 진짜 마지막에 남는 건, 말투가 닮아간다는 사실보다도… 그 닮음이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속도를 올려준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대화가 끝나기 전에 상대의 말끝을 맞히는데, 가끔은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무서워요. 왜냐면 어느 순간부터 제가 제 말이 아니라 “우리 말”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연애의 승자는 결국 말투가 아니라, 서로를 편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뒤늦게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