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갑자기 팀장이 감정노동하는 걸 봄
회사에서 갑자기 팀장이 감정노동하는 걸 봄. 그것도 “사소한 회의”라고 불리는 시간에 갑자기, 갑자기요. 저는 그냥 커피 리필하러 가는 길에 들었는데, 팀장 목소리가 평소랑 너무 달랐습니다. 특유의 딱딱한 톤이 아니라, 라디오 진행자처럼 매끄럽고 웃음이 먼저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엔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회의실 들어가자마자 딱 확신이 들더라고요. 팀장이 고객사 담당자 통화 내용을 정리하면서 “네~ 말씀하신 부분 완전 이해했습니다” “저희도 최대한 빠르게 일정 맞춰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그 문장들이 너무 교과서처럼 정확했어요. 웃음도 적당한 타이밍에 끊기고요. 저는 옆에 앉은 선배 얼굴을 봤더니 선배도 눈만 크게 뜨고 있었습니다.
원래 팀장이 감정노동을 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회의 때는 늘 “이거 끝내야죠” “우선순위 다시 잡겠습니다” 이러면서 감정이 거의 없는 편이었어요. 근데 오늘은 표정이 완전 다르더라구요. 회의 시작부터 미소가 고정되어 있고, 고개가 끄덕끄덕 하는 속도가… 뭐랄까, 자동응답기처럼 일정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괜히 제가 웃음 버튼 눌린 것처럼 따라 웃을 뻔했어요.
그리고 그게 더 웃긴 게, 팀장이 갑자기 “말투”를 의도적으로 바꾸더라고요. 평소엔 “그건 어렵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끊는데, 지금은 “조금만 더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확인해서 다시 드리겠습니다” 같은 표현을 계속 쓰는데, 표정까지 같이 맞춰서 하니까 진짜 연기 같았어요. 저는 멍하니 듣다가 속으로 “이 사람 혹시 직업이 콜센터였나” 싶었습니다.
회의가 중반으로 넘어가자 팀장이 갑자기 발표 자료를 넘기는데, 넘기는 속도도 더 부드러워졌어요. 마치 내용이 아니라 상대의 기분을 넘기는 것처럼요. 어떤 슬라이드에서는 “여기 보시면 고객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이랑 맞닿아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순간 제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아니, 우리 자료는 그냥 일정표인데요… 왜 고객님이 나오지? 싶어서요.
그 와중에 옆자리 대리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팀장님, 저기 문구가 조금… 딱딱할 수 있는데요”라고 말하니까 팀장이 얼굴을 더 환하게 펴더니 “아,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표현을 더 부드럽게 가져가면 좋겠습니다”라고 즉시 대응하더라고요. 대리님은 안심한 표정이었고, 팀장은 그때부터 더더욱 서비스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표정이 너무 프로 같아서 오히려 제가 긴장됐어요.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거 누가 시킨 감정노동이 아니라 “팀장이 스스로 자가발동한 감정노동”이구나. 왜냐면 회의실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거든요. 평소엔 누가 한 번 툭 던지면 다들 조용해지는데, 오늘은 팀장이 분위기를 계속 띄우려고 애쓰는 느낌이었어요.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팀장이 먼저 “네, 좋습니다”를 던지니까 다들 할 말이 줄줄 들어가는 거예요. 웃기죠.
그리고 마지막에 진짜 결정타가 나왔습니다. 회의 끝나기 직전, 팀장이 갑자기 “혹시 고객사에서 더 궁금해하실 만한 포인트가 있을까요?”라고 묻더니, 누가 답하기 전에 바로 “없다고 하셔도 제가 정리해서 다시 드릴게요”라고 덧붙였어요. 그 말투가 너무 친절해서, 저는 순간 ‘이 사람 오늘 연차 내고 친절 교육 받았나’ 생각했습니다. 근데 다들 아무도 물어보지 못했어요. 왜냐면 물어보면 티가 날 것 같았거든요. 진짜로요.
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리로 돌아가는데, 팀장님이 제 옆을 지나가면서 조용히 “아까 그 말투… 제가 너무 티 났죠?”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당황해서 “아니요, 오히려 잘하셨어요”라고 말했는데, 속으로는 웃음이 올라오더라고요. 팀장이 감정노동을 ‘잘’한 날이 아니라, 감정노동을 ‘자각’한 날이라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달까요. 그날 이후로 저는 회의실에서 누가 갑자기 너무 다정해지면, 그건 보통 ‘연민’이 아니라 ‘고객사’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하나였어요. 다음에 팀장이 갑자기 친절 모드로 들어가면… 저는 일단 커피부터 리필해두면 된다는 것. 분위기 맞추는 게 결국 제일 빠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