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면서 혼자 살면 덜 무섭다던데… 밤에 딱
자취하면서 혼자 살면 덜 무섭다던데… 밤에 딱. 나도 그런 말 믿고 원룸 계약할 때 “혼자 살아도 괜찮겠지” 이러고 웃었거든요. 낮에는 진짜 멀쩡해요. 퇴근하고 집 들어오면 햇빛 냄새도 나고, 유튜브 틀어놓으면 세상 다 내 편 같고요. 근데 그게 다 착각이더라고요. 밤이 되면, 그 특유의 고요가 사람 머리를 때려요.
사건은 딱 ‘그 시간’에 터졌어요. 처음엔 그냥 평소처럼 샤워하고 나오는데, 물 소리 멎는 순간 방이 확 식는 느낌이랐어요. 보일러는 켜져 있는데도 공기가 차가운 게 아니라 마음이 차가워지는 느낌. 그리고 이상하게 거실 쪽에서 아주 미세한 “뚝”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스피커 볼륨을 더 줄일수록 그 소리가 또렷해져요. 저는 원래 소리 민감한 편 아닌데 그날만 유독 그랬어요.
“아, 배관 쪽이겠지.” 이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죠. 혼자 살면 덜 무섭다던 사람들도 아마 이런 거 겪고 “괜찮다” 했을 거라고 믿고 싶었고요. 근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예요. 소리가 한 번 났다가 멈추는 게 아니라,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돼요. 정확히는 제가 잠자리에 들기 직전, 휴대폰 화면을 끄는 타이밍에 맞춰서 또 들리더라고요. 너무 티 나게 타이밍을 맞춰주니까, 저도 괜히 공포 영화 주인공처럼 “나 지금 뭔가 들었는데?” 싶은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용기 내서 확인하려고 방 문을 열었어요. 현관 쪽까지 가는 동안 심장이 좀 빨라지는데, 그 속도가 또 웃겨요. 제가 평소에도 심장이 빨라지는 상황이 많긴 한데, 그건 보통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때’잖아요. 근데 그날은 재밌는 일은 없는데 심장만 행사하듯 뛰는 느낌.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바로 복도 불빛이 들어오는데, 복도는 정말 멀쩡해요. 바닥도 깨끗하고, 냄새도 없고, 아무도 안 보여요.
근데 이상하게 그 순간, 복도에서 제가 평소에 안 하던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기 누가 살면, 저 문 너머 소리도 들릴까?” 이런 식으로요. 혼자 살면 덜 무섭다던 말은, 결국 ‘내가 무서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고정하면 괜찮다’는 뜻일 뿐이잖아요. 저는 그날 마음 고정이 안 됐어요. 대신 머릿속에 이미 시나리오가 깔리더라고요. ‘배관이겠지’에서 시작해서 ‘관리실에 전화해야 하나’까지 순식간에 점프. 근데 새벽에 전화하면 또 내가 별일 아닌 걸로 귀찮게 한 것 같고… 그게 더 무서운 거예요. 괜히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민폐자가 될까 봐.
결국 저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려고 조용히 귀를 세웠죠. 그런데 소리가 “뚝”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지지직” 같은 미세한 잡음도 섞여 있어요. 이게 배관인지, 전기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건물 자체가 가진 소리인지 헷갈리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전기 문제 쪽으로 마음이 먼저 가더라고요. 그래서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콘센트 쪽을 봤어요. 그때 딱 전원 멀티탭에 꽂힌 충전기에서 아주 약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제가 아까 샤워하면서 살짝 건드렸나 봐요. 그런데 문제는… 손을 대는 순간, 소리가 뚝 끊긴 게 아니라 더 크게 한 번 나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영화 같아서 오히려 더 얼어붙었어요.
“아니, 괜찮아. 그냥 접촉 문제야.” 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가락을 멀티탭에서 떼는 게 늦었어요. 왜냐면 그 소리가 ‘그냥 소리’가 아니라 ‘나를 부르는 소리’처럼 느껴졌거든요. 혼자 있을 때 사람 뇌가 제일 잘하는 일이 상상으로 도망치는 거잖아요.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예전에 친구가 “혼자 살면 무섭지 않아. 무섭긴 한데, 그 무서움이 혼자서 처리돼서 덜 무섭다”라고 한 말이요. 근데 그날은 처리할 방법이 없었어요. 관리실은 새벽이고, 친구들은 다 자고 있고,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확인과 상상뿐.
결국 저는 ‘안전하게’ 하겠다고 다 꺼버렸어요. 전등도 끄고, 멀티탭도 빼고,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죠. 그러면 보통 마음이 좀 안정되잖아요. 근데 그날은요, 안정되긴커녕 이불 안에서만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아요. 소리가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조용하니까 더 무서울 것 같은데?”가 올라오고, 소리가 나면 또 “아까 그 소리랑 같으면 어떡하지?”가 올라오고. 그러니까 결론은 뭔가요? 혼자 살면 덜 무섭다던 건, 적어도 내가 잠들기 전에 머리 속이 조용해야 가능한 얘기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황당한 결말이 났어요. 잠이 거의 들 무렵, 갑자기 베란다 쪽에서 “툭”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나요. 저는 그 순간 너무 지쳐서, 괜히 벌떡 일어나서 확인할 힘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눈 뜬 채로 귀만 기울였는데, 알고 보니까 빨래집게가 바람에 튕긴 소리더라고요. 제가 어제 낮에 건조대에 집게를 제대로 닫지 않았던 거예요. 새벽 바람 한 번에, 전부 오해가 풀리면서 동시에 웃음이 나왔어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무서워했던 건 귀신이 아니라… 내 머리가 먼저 뛰쳐나간 상상이고, 그 상상을 부끄럽게 만드는 건 늘 아주 사소한 ‘툭’ 소리라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