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유머/짤방 유머 추천 0

회사에서 물어볼 사람 없어서 내가 다 함

2026-09-12 20:41:11 조회 19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회사에서 물어볼 사람 없어서 내가 다 함. 진짜 제목 그대로예요. 팀에 선배가 있긴 한데, “알아봐드릴게요” 하고 사라지시는 타입이라서 결국 제 손이 제 발목을 잡더라고요. 어느 날부터는 회의 끝나면 다들 퇴근 준비하는데, 저는 질문 목록을 들고 혼자 남아서 노트북을 켜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처음엔 “제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근데 일이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그 가벼움이 아니라 거의 생존 모드가 됐습니다. 메일은 계속 오고, 담당자는 “확인해봐요”만 치고 끝. 저는 그 확인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서운 뜻일 줄 몰랐어요. 확인하면 끝날 일이 있고, 확인하면 새로운 확인이 생기는 일도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월초에 보고서 양식이 갑자기 바뀐 적이 있어요. 공지에는 “기존과 동일합니다”라고만 써 있었는데, 막상 열어보면 동일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료를 찾다가 버전 기록을 뒤지고, 혹시 누가 예전에 써둔 문서가 없나 팀 폴더를 뒤졌죠. 그런데 폴더 구조가 ‘최신/최신최신/최신최신(최종)/진짜최종(수정)’ 이런 식이라서, 저는 그날 이후로 인생이 진짜로 ‘최종’은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 와중에 물어볼 사람도 없어요. 옆자리 대리님은 “그건 저희 라인이 아니에요”라고 하시고, 다른 팀 과장님은 “저는 보고만 해요”라고 하셨어요. 그럼 저는 뭘 하냐고요? 네, 당연히 제가 다 합니다. 제가 다 하는데, 제가 하는 방식이 또 문제라서요. 저는 물어보면 답을 얻고 싶은데, 다들 대답 대신 질문을 돌려주더라고요. “혹시 네가 확인해봤어?” “네가 최근에 본 문서가 뭐야?” 이러면서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고객 문의가 오면 회신 초안을 먼저 쓰고, 내부 공유는 슬랙으로 정리하고, 일정은 캘린더에 박아두고, 회의 때는 “어제 확인한 내용 기준으로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만 끄덕여요. 근데 그 고개 끄덕임이 묘하게 책임을 제 쪽으로 몰아주는 느낌이라… 저는 회의 끝나면 또 혼자 남아서 정리본을 재확인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이 업무, 누가 맡고 있어요?”라는 질문이 나왔어요. 다들 눈을 잠깐씩 굴리더니, 자연스럽게 제 쪽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딱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무도 안 묻는 시스템은 결국 묻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자동 생성하더라고요. 저는 그 자동 생성의 결과로 살아남은 사람… 같은 느낌이었죠.

문제는 제가 일을 잘해서라기보다, 정말로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였다는 데 있어요. 회사에서는 가끔 역할이 아니라 공백을 분배하잖아요. 누가 해야 하는지 정해진 게 아니라, 아무도 안 하는 게 있으면 그게 누군가한테 “배정”되는 구조. 저는 그 배정이 제 일상으로 굳어버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스스로 찾아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퇴근 시간에 집에 가면서도 머릿속에서 “내일 뭐부터 확인하지?”를 계속 굴리게 됐어요.

그래도 이상하게 성취감은 생기더라고요. 제가 다 하니까 결과물이 쌓이잖아요. 보고서는 깔끔해지고, 일정은 안 밀리고, 고객 응대도 늦지 않게 되고요. 근데 그 성취감이 아주 살짝 씁쓸해요. 왜냐면 칭찬은 “잘하네”로 끝나고, 구조 개선은 “다음에 보자”로 미뤄지니까요. 문제 해결은 제가 해주는데,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는 그 느낌. 그래서 저는 종종 제 자신을 ‘임시방편의 정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웃긴 사건 하나만 말할게요. 어느 날 회의에서 누가 “이 부분은 누가 처리하죠?”라고 물었는데, 다들 조용해지는 거예요. 저는 습관처럼 손을 들지 않으려 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손을 들어야 하는 타이밍이 오질 않더라고요.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가 조용히 말했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자 회의실에서 누군가가 웃으면서 “결국 너네가 다 하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왜냐면 그게 제 인생의 업무보고였거든요. 결국 회사에서 물어볼 사람 없어서, 내가 다 함.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저를 제일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식이었다는 게, 웃프지만 진짜 결론이었습니다.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