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면서 사소한 약속을 놓친 날
연애하면서 사소한 약속을 놓친 날이라는 게, 딱 거창한 사건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더라. 그날도 그냥 평범하게 “나 퇴근하면 전화할게” 정도로 시작했는데, 왜인지 그 사소한 문장 하나가 연쇄반응처럼 내 하루를 망치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 맞춰서 나도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거든. 회사에서 갑자기 회의가 길어지고, 핸드폰은 배터리 12%에서 9%까지 떨어지고… 그래도 “전화 한 통만 하면 되지” 싶어서, 허겁지겁 집 가는 길에 신호 잡히는 곳에서 벨을 눌렀다. 그런데 그때 상대는 이미 바깥 약속이 있는 날이었고, 내가 전화를 못 받았던 거야.
나는 또 스스로를 합리화했지. “아, 바쁘면 못 받을 수도 있지.” 근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내가 약속한 건 전화가 아니라, ‘퇴근하고 나면 7시에 카톡으로 사진 하나 보내기’였거든. 상대는 “그냥 오늘도 한 장만” 이런 식으로 툭 던졌는데, 나는 그걸 ‘전화’로 기억을 바꿔버린 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카톡을 보내려고 했는데, 자꾸 손이 멍해지는 느낌이었어. “지금 사진 보내면 되나?” 싶다가도, 이미 시간이 7시를 한참 넘긴 상태라서 더 이상하게 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사진을 보내지 않고, “아 미안, 오늘 회의가 늦어졌어. 내일 보낼게”라고 길게 사과할 문장을 쓰고 저장만 하고 잠깐 시간을 더 썼다.
여기서 진짜 웃긴 건, 상대가 답장으로 뭐라고 물어본 게 아니라 바로 “괜찮아”라고 온 거야. 근데 그게 위로가 아니라, 완전 단정한 말투였어. 나는 ‘괜찮아=진짜 괜찮다’라고 착각하고 넘어갔는데, 그 “괜찮아” 뒤에 붙는 설명이 없으니까 더 불안해지더라. 결국 나는 그제야 내가 놓친 게 뭔지 떠올랐다. 사진. 사소한 사진 한 장. 근데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대충 전화 못한 거겠지”로 바뀌어 있었던 거지.
시간이 지나서 밤 10시쯤, 상대가 통화하자고 연락을 했어. 나는 “아, 이제야 말해주나?” 하고 긴장했는데, 통화 시작하자마자 상대가 아주 담담하게 말하더라. “너 일부러 그런 건 아니란 거 알아. 근데 나한테는 작은 약속이 매번 누적되는 거라서, 오늘처럼 한 번 놓치면… 나도 ‘어? 나만 기다렸나?’ 싶어.”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나도 말문이 막혔어. 솔직히 나는 “약속을 깼다”는 게 아니라 “실수했다” 쪽에 더 마음이 갔는데, 상대는 그 실수의 결과를 마음으로 먼저 계산한 거더라. 나는 즉시 변명하고 싶었지만, 대신 “내일은 아침에 사진 먼저 보내고, 퇴근하면 카톡으로 바로 확인할게. 그리고 오늘은 내가 왜 놓쳤는지도 말할게”라고 했어. 상대는 한참 듣더니 “응, 그렇게 해주면 돼”라고만 하고 통화를 끊었지.
다음 날 아침 나는 진짜로 사진을 보냈어. 그냥 풍경 아무거나 찍어서 보낼까 하다가, 전날 못 보낸 걸 만회하겠다는 마음으로 귀찮아도 제대로 찍더라. 그리고 그 밑에 “사진 한 장이 약속이었던 걸 오늘 알았어. 미안. 다음부턴 바로바로 체크할게”라고 짧게 썼다. 보내고 나서 바로 “답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상대가 늦게 답해도 괜찮더라. 어제의 미묘한 공기가, 오늘의 한 줄로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거든.
근데 진짜 교훈은 따로 있었어. 그날 오후에 상대가 장난처럼 “너 혹시 어제 사진 안 보낸 날을 ‘카톡을 안 본 날’로 착각했지?”라고 물었거든. 나는 “응… 완전 그렇게 착각했다”고 인정했고, 상대는 “그러면 다음부턴 ‘사진’이 아니라 ‘시간’이 약속인 거 기억하자”라고 웃더라. 결국 우리 둘 다 큰 사건을 만든 건 아니었는데, 사소한 약속 하나가 연애의 온도 조절 버튼이더라. 그리고 그 버튼은, 누르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생각보다 쉽게 안 눌리는 거라… 나 오늘도 매번 퇴근 전에 캘린더부터 먼저 확인한다. 의외로 이게 제일 마음이 편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