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내 자취방 방문하고 간 흔적
가족이 내 자취방 방문하고 간 흔적… 그날도 난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 문을 열었는데, 이상하게 공기가 “나 다녀왔어” 같은 톤으로 나를 맞이하더라. 냄새는 딱 그거였어. 누가 마트에서 집 냄새를 한 번만 묻혀놓고 간 느낌. 솔직히 처음엔 기분 탓인가 했지.
근데 현관에서부터 이미 티가 났다. 신발장에 내 운동화 한 켤레는 늘 옆으로 살짝 비켜 있어야 발이 잘 들어가는데, 그날은 정렬이 완벽하게 되어 있더라. 내가 보통 맞춰놓는 기준이 아니라, 누가 일부러 “정리했다”는 티가 나는 각도였어. 그 순간 “아, 설마”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문제는 다음 단계가 더 확실했어.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거실장이 좀 달라 보였어. TV 리모컨이 원래는 내가 쓰고 나면 아무 데나 툭 올려두는 편인데, 그날은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 더 웃긴 건 리모컨 배터리 방향까지 맞춰둔 것 같았다는 거.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닌데, 누가 봐도 “바로 다시 써도 되게” 해둔 손길이더라.
부엌으로 가면 진짜 범인이 눈앞에 있는 느낌이었어. 설거지통에 물이 반쯤 차 있었고, 그 물 위에 행주가 살짝 젖어 떠 있었거든. 난 보통 물을 싹 버리고 말리는 편인데, 누군가가 “그래, 이 정도면 됐지” 하고 멈춘 상태였어. 그리고 싱크대 옆엔 내가 거의 안 쓰는 스펀지 수세미가 새 거처럼 놓여 있었어. “새로 사둠”이 아니라 “누가 잠깐 보고 교체했음” 느낌. 딱 그거지.
냉장고도 난리였어. 내가 저녁에 꺼내 먹으려고 꺼내놓은 요구르트가 없더라. 대신 내가 안 먹는 과일 종류가 하나 더 들어가 있었고, 그 위에는 종이 쪽지가 붙어 있었어. 거기엔 “이거 신선할 때 먹어”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문제는 글씨체가 너무 익숙하다는 거야. 누가 봐도 우리 집에서만 쓰는 그 글씨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이건 거의 “증거 수집 끝” 같은 느낌이었다. 침대 옆 스탠드 불이 꺼져 있어야 하는데 켜져 있었고, 시계도 딱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맞춰져 있었어. 난 시간 맞추는 것도 귀찮아서 늘 틀어져 있는데, 누군가가 “쟤 불편하겠다” 싶어서 손댄 게 분명했지. 옷장 문은 닫혀 있었고, 열쇠 위치까지 원래 내 습관대로 딱 맞게 놓여 있더라. 열쇠가 원래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면 내가 밤에 찾느라 맨붕 오는데, 그걸 누가 막아준 셈이잖아.
그리고 제일 소름은 욕실 타월이었어. 난 타월을 쓰면 바닥에 슥 내려놓는 편이라 그날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타월이 깔끔하게 걸려 있었고 심지어 색깔별로 위치가 정해져 있더라. 우리 집에서야 당연히 그렇게 쓰겠지. 근데 자취방에서 그 규칙을 내가 지킬 이유가 전혀 없어. 그걸 보고 “아, 가족이 진짜 왔구나” 확신이 들었지. 그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는 웃긴데 또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더라.
나는 바로 “혹시 다녀가셨어요?”라고 문자 보낼까 하다가도, 또 그러면 내가 ‘방을 몰래 확인했구나’처럼 보일까 봐 고민했어. 대신 다음 날 장을 봐오면서 일부러 확인했지. 내 개인 물건, 특히 영수증이나 작은 서랍 속 물건은 건드리면 티가 나거든. 그런데 진짜로 건드린 흔적은 없는데, 생활 동선만 완벽하게 정리돼 있는 거야. “몰래 온 건 맞는데, 신경은 최대치로 썼다” 이 느낌. 그러니까 서운함이랑 고마움이 같이 올라오더라.
결국 결론은 이거였어. 가족이 내 자취방에 온 건 맞고, 다녀간 흔적을 남긴 것도 맞는데, 그 흔적이 전부 ‘거슬릴 만큼’은 아니더라. 오히려 내가 쓰는 불편함을 미리 줄여주려 한 티가 있어서 더 웃겼어. 그래서 난 그날 밤 그냥 혼잣말로 “다음엔 오면 최소한 ‘나 왔다’ 한 줄은 써주자” 하고 넘겼는데, 다음 주에 또 현관에 신발 정렬이 완벽하게 되어 있더라. 아, 이쯤 되면 우리 집은 내가 자취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 자취방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된 건가 싶었어. 결국 나는 오늘도 신발 정렬을 보고 피식 웃게 되더라. “가족이 다녀간 건 확실한데, 마음은 또 왜 이렇게 따뜻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