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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으로 산 전자제품, 리모컨이 없어서 새로 샀다

2026-09-17 15:41:10 조회 1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당근으로 산 전자제품, 리모컨이 없어서 새로 샀다. 처음엔 “설마 리모컨이 없겠어?”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판매자 답장이 딱 한 문장으로 끝나더라고요. “리모컨은 분실됐어요. 대신 기기 자체 버튼은 됩니다.” 그 말 듣고 저는 이미 마음속에서 리모컨을 살 운명이 확정된 느낌이었어요.

물건은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어요. 화면도 멀쩡하고, 전원 켜지면 반응도 빨랐고, 연결도 되긴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 되는데 왜 굳이 리모컨이 필요하냐”를 제가 현장에서 바로 깨달았다는 거죠. 티비나 셋톱 같은 건 버튼이 있어도 입력이랑 이동이 너무 번거로워요. 메뉴 들어가려면 몇 번을 꾹꾹 눌러야 하는지, 그게 손가락 마디에 ‘노동’이 생깁니다.

설정 화면에서 채널 스캔을 하려고 하는데, 버튼으로 채널을 넘기다가 한 번 꼬이면 다시 처음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한 번만 하면 되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리모컨이 없으면 볼륨도, 입력 소스도, 화질 모드도 버튼 누르는 타이밍을 맞춰야 해요. 저는 리모컨이 없어서가 아니라, 버튼을 누르며 화면을 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점점 현타가 왔습니다.

그래도 일단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죠. 모델명 찾아서 “호환 리모컨”을 찾아보는데, 여기서부터가 진짜 웃픈 포인트예요. 같은 모델명이라도 세대가 여러 개라서, 사진만 보고 고르면 안 맞을 수 있다더라고요. 저는 당근 판매글에 적힌 모델명을 대충 믿고 주문 버튼을 누르려다가, 혹시나 하고 댓글을 정독했어요. 댓글에 “이거랑 이거 다르다” “이 버튼은 없더라” 같은 말이 줄줄이 달려있는데, 그걸 읽는 순간 제 손가락이 자동으로 멈췄습니다.

결국 저는 판매자에게 한 번 더 확인 연락을 했어요. “혹시 리모컨 없이도 버튼으로 메뉴 들어가면 설정 화면에 모델 정보가 보이나요?” 이렇게 물어보는 게 좀 웃기긴 한데, 당근에서 산 물건은 결국 제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판매자는 “정보는 잘 모르겠어요. 대신 옛날에 잘 쓰던 거예요”라고 답했고, 저는 그 문장 속에 숨은 뜻을 해석했습니다. ‘리모컨은 없고, 당신이 알아서 맞춰.’

그래서 방법을 바꿨어요. 리모컨을 그냥 사는 게 아니라, “기기에서 확인 가능한 단서”를 뽑아보기로 한 겁니다. 설정에서 버전 확인하고, 화면에 나오는 메뉴 구성 확인하고, 버튼 위치를 찍어서 비교해보는 식으로요. 이쯤 되면 전자제품이 아니라 제가 탐정이 된 느낌입니다. 그렇게 단서 모으고 나서야 겨우 호환 리모컨을 골랐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더 웃겼어요. 당근으로 아낀 게 리모컨으로 한 번에 증발할 줄 알았는데, 또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

새 리모컨 받고 처음 눌렀을 때는 진짜 감동이었습니다. 볼륨이 손가락 한 번에 움직이고, 입력이 매끄럽고, 채널이 쓱쓱 넘어가니까 예전에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나 싶어요. 근데 동시에 아쉬움도 생겼죠. 리모컨이 없던 그 시간 동안 저는 버튼을 누르며 “내가 왜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를 계속 생각했거든요. 결국 문제는 리모컨이 아니라, 그걸 모르고 사버린 제 성격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당근 거래는 원래 이런 맛이 있잖아요. 싸게 사서 내가 옵션을 붙이고, 내가 맞추고, 내가 해결하고. 전자제품이든 생활이든 결국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는 구조”로 굴러가더라고요. 리모컨을 사면서도 솔직히 웃긴 게, 새로 산 리모컨을 기기 앞에 놓고 처음 테스트할 때 제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이 “버튼으로도 되는지” 확인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저는 리모컨이 와도 버튼을 한 번 더 눌러보는 사람이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면, 당근 판매글에 “리모컨 분실, 버튼 가능”이라고 써있던 그 문장을 지금 다시 보면 괜히 마음이 편해요. 그 말이 정직했거든요. 저는 돈을 더 썼지만, 그만큼 손이 덜 고생하게 됐고, 무엇보다도 “다음 거래는 더 꼼꼼히 보자”라는 교훈을 확실하게 얻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리모컨이 없던 시절을 떠올리며 혼자 피식해요. 그때 저는 분명히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사실은 제가 리모컨을 대신하고 있었던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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