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면서 에어컨 리모컨 찾느라 한 시간
자취 시작하고 제일 먼저 산 게 에어컨이랑 전자렌지랑 뭐 이런 기본템이잖아요. 근데 문제는, 리모컨이 없으면 에어컨이 그냥 “벽에 달린 장식품”이 된다는 거예요. 오늘도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냉방부터 틀려고 했는데, 평소에 올려두는 자리(정확히는 아무 생각 없이 던져두는 자리)에서 리모컨이 안 보이더라고요. “설마 여기 있겠지” 하고 바로 한 시간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낙관했죠. 침대 옆, 바닥, 테이블 위, 옷 개는 서랍… 안 보이면 뭐가 이상한가 싶어서 더 세게 뒤졌어요. 특히 침대 아래는 자취생의 미지의 영역이라, 먼지랑 생활의 증거물들이 같이 쌓여 있거든요. 손 넣었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잡히는 느낌이 들길래 “드디어!” 했는데, 알고 보니 휴지 더미였어요. 그 순간부터 제가 리모컨을 찾는 게 아니라, 제 멘탈을 찾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다음은 “혹시 옷장에 들어갔나?” 모드로 전환됐어요. 여름엔 땀에 젖은 옷을 대충 걸어놓는 편인데, 세탁바구니랑 옷걸이 사이에 리모컨이 끼었을 확률이 있잖아요. 그래서 옷장 문 열자마자 옷을 다 꺼내고 다시 정리하는 걸 반복했는데, 그 사이에는 이미 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정리하다가 발견한 건 리모컨이 아니라 양말 한 짝이랑 영수증 한 장, 그리고 “왜 이걸 지금까지 안 버렸지?”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는 검색이 시작됐어요. 자취방은 인터넷이 되니까, 리모컨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근데 검색 결과가 다 똑같은 말이에요. “스마트폰으로 제어 가능”, “보일러 리모컨이랑 헷갈릴 수 있음”, “리모컨이 실내기에서 떨어지면 신호가 안 잡힘.” 저는 여기서 보일러 리모컨이 있긴 한데, 우리 집 보일러는 지금 절대 켤 일이 없는 시즌이에요. 그러니까 헷갈릴 리가 없는데도, 뇌가 계속 “설마 거기 있나?”를 만들어내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제일 현실적인 루트로 갔습니다. 실내기 앞에서 고개를 들고 버튼을 눌러보는 거요. 에어컨 본체에 버튼이 있긴 하잖아요. 그런데 그 버튼이 또… 생각보다 잘 안 눌러져요. 손가락 힘이 약한 건지, 아니면 제가 너무 더워져서 손이 떨리는 건지 모르겠는데, 눌렀다 싶으면 “삐-” 하고 반응하는 척하다가 다시 조용해지는 느낌. 그때 저는 알았어요. 에어컨이 안 켜지는 게 아니라, 제가 켜는 법을 잊은 겁니다. 자취는 생존이 아니라 망각 훈련이었어요.
잠깐 멈추고 물 한 컵 마시면서 생각해봤죠. “내가 마지막으로 리모컨을 본 게 언제였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난주에 친구가 놀러 와서 에어컨 바람 세기를 보여줬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리모컨 여기 있어”라고 말하긴 했는데, 말한 순간이 제 손에서 리모컨이 빠져나간 순간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친구 카톡을 다시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부터 카톡 기록도 뒤집니다. 자취방은 리모컨 찾기와 동시에 인간관계까지 점검하는 공간이더라고요.
결국 찾았는데, 장소가 제일 황당했어요. 냉장고 위 선반이요. 거기엔 원래 잡동사니를 올리는데, 리모컨이 왜 거기까지 갔는지 설명이 안 됐어요. 근데 제가 딱 알죠. 아까 옷장 뒤지다가 배고파서 과자 찾으려고 냉장고 쪽에서 잠깐 몸을 비틀었거든요. 그때 손으로 뭔가를 툭 건드렸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그걸 “어? 뭐지?” 하고 선반에 올려놓고 잊어버렸겠죠. 자취생의 기억력은 냉장고 문 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걸 오늘 또 증명했습니다.
리모컨을 찾자마자 에어컨을 켰는데, 세상에… 바람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기분이 확 좋아지더라고요. 근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제 머릿속엔 ‘어쨌든 한 시간은 이미 날렸다’는 생각이 따라왔어요. 에어컨이 시원해지는 건 빨랐지만, 제 땀은 이미 제 피부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보니 어제 설정해둔 모드 그대로더라고요. 저는 리모컨을 찾는 동안, 이미 제가 제 방의 온도를 관리하는 능력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는 사실만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정리하면 이거예요. 자취하면서 에어컨 리모컨 찾느라 한 시간은, 사실 에어컨보다 제가 먼저 식어가는 시간을 본 거였습니다. 다음엔 리모컨을 찾는 게 아니라 리모컨이 제 생활패턴을 먼저 따라오게 해볼까 고민 중이에요. 예를 들면 “리모컨이 없으면 내가 출발” 같은 시스템… 근데 그런 시스템은 아마 저도 없겠죠. 어쨌든 오늘도 저는 시원한 바람 아래에서, 땀 냄새 나는 자기합리화를 한 번 더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