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다가 서로 선물 주고받고 당황한 날
연애하다가 서로 선물 주고받고 당황한 날, 그냥 평범한 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문제의 시작은 퇴근하고 집 문 열자마자 “딱 기다려요!” 하는 목소리에서부터였습니다. 문밖에 뭔가 놓여 있길래 보니까 제 이름이 적힌 작은 종이봉투가 딱!
저는 그 순간 딱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어요. 첫째, 배달 실수. 둘째, 누가 제 앞집을 알고 있다는 수준의 정체불명 이벤트. 봉투를 들고 들어오자마자 상대가 주방 쪽에서 슬쩍 웃더라고요. “어떤 거일지 맞혀봐요.”라고 하는데, 제 머릿속은 이미 ‘복권 당첨’이랑 ‘소포 오배송’만 번갈아 재생됐습니다.
봉투 안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고, 그 안에는 손바닥만 한 향초가 들어있었어요. 향초 자체는 되게 귀엽고 무난했는데, 상자 옆면에 종이 스티커로 “오늘 밤은 마음이 편해지는 향”이라고 적혀 있는 게 더 문제였어요. 저는 향초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솔직히 집에 향이 너무 강하면 금방 질리는 편인데, 상대는 제가 좋아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라 괜히 더 당황했죠.
당황을 숨기려고 “오, 이거 되게 센스 있다. 근데 나 향초 잘 안 켜는데…”라고 말했더니 상대가 그제야 “아, 그럼…” 하고 멈칫하더라고요. 표정이 갑자기 미묘해지길래 저는 순간 늦게 깨달았어요. 상대는 ‘선물을 고르는 센스’보다 ‘제 마음을 읽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거구나. 제가 방금 한 말이, 그 연습에 실수로 찬물을 끼얹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서둘러 수습하려고 “근데 예쁘긴 하다. 그리고 향도… 맡아보면 괜찮을 수도 있지.”라고 말했어요. 향초를 켜지는 건 무리더라도, 장식용으로 둘 수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또 상대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그럼 이건 제 선물!”이라고 하며 제 손에 다른 작은 봉투를 쥐어주는 거예요. 아까 받은 봉투랑 크기가 비슷해서, 저는 그 순간 심장이 또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제 봉투 안에는 제가 평소에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 없는 물건이 들어 있었어요. 딱 보자마자 알겠더라고요. 제 책상 서랍에 항상 굴러다니는, 불편해서 못 쓰는 필기구가 있는데… 그거랑 같은 모델의 펜이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필기감에 맞춘 리필까지 같이 들어있고, 리필 옆에는 또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어요. “쓰다가 불편하면 말해요. 그럼 내가 또 찾아볼게요.”
그 메모를 읽는데, 제가 방금까지 “아 향초 잘 안 켜는데…” 하던 장면이 영화처럼 재생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너무 진지해져서 “너…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확히 알아?”라고 묻고 말았고, 상대는 “그냥요. 대충 듣는 것 같아도 말버릇이 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편해서, 저는 그날만큼은 ‘선물’이 아니라 ‘관찰’과 ‘배려’ 자체를 받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상하게 따뜻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향초는 그날 밤에 켜보지도 못하고 그냥 탁자 위에 올려뒀는데, 상대가 “향이 약하면 더 약하게 해줄게요” 하면서 제 집 향 환경을 스스로 진단하기 시작한 겁니다. 제가 원래 예민한 편이라 “괜찮아, 나중에 그냥 정리하자”라고 둘러댔더니, 상대는 갑자기 주방에 있는 향신료까지 냄새 맡아보면서 비교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고마워서 말이 안 나왔어요.
결국 둘 다 어설프게 해결했습니다. 향초는 꺼내서 빛만 살짝 보고, 펜은 바로 써봤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집안 분위기가 엄청 평범하지 않았어요. 서로 선물을 했는데, 선물보다 더 큰 게 생긴 날이랄까요. 저는 그날 밤 메모를 다시 읽다가 피식 웃었고, 상대는 향초 옆에 작은 종이를 붙여두더라고요. “다음엔 정말 내 마음이 편해지는지 확인하기.” 이렇게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요. 연애하면서 선물 주고받고 당황하는 건 당연한데, 그 당황이 결국 서로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더라고요. 오늘 밤은 향이 편한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다음 선물은… 아마 저도 조금은 ‘대충’이 아니라 ‘정확히’ 알아보도록 연습하게 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그 향초는 아직도 켜본 적이 없지만요. 다만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동안에는, 왠지 제가 계속 좋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