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 생긴 누수, 하필 배달 온 날에
자취방에 누수가 생겼던 날이, 하필 내가 배달을 시킨 날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배달 도착했습니다” 알림 뜨는 순간부터 물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에서 똑똑이 아니라 ‘뚝, 뚝’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도 그냥 위층이 샤워를 오래 하나 보다 했는데, 현실은 제 방 천장이 먼저 회사를 설립할 기세였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짐 내려놓고, 따뜻한 밥이랑 치킨 같은 걸로 기분 전환하려고 배달 앱을 켰거든요. 누수 얘기 나오기 전까지는 제 삶이 평화로웠습니다. 알림이 세 번쯤 울리고, 현관 앞 벨 소리 들리기 전에 이미 “어? 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싶었어요. 소리 나는 쪽이 천장이라서 더 웃겼던 게, 저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물? 설마 누수?’를 ‘빗방울 효과음’처럼 취급했어요.
배달원이 문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얼른 받으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 열자마자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냄새가 확 올라왔습니다. 눅눅한 냄새에 비닐봉지에서 나는 기름 냄새가 섞이니까, 뭐랄까… “치킨의 고급스러운 레이어링”이 아니라 그냥 재난 대비 세트 느낌이었어요. 배달은 손에 쥐었는데, 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천장을 봤고, 그때 물이 한 번 더 ‘뚝’ 떨어지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 순간 진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치킨이랑 라면 생각보다 제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배달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물 떨어지는 지점 아래에 대충 그릇을 놓으려고 했는데 그릇이 없어서 뭐를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배달 온 날이라 있던 비닐봉지였어요. 비닐봉지에 물을 받으려는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기술이라 비닐이 늘어나면서 더 크게 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건 물이 아니라 저희 집의 자존심이 새는 거다” 싶었어요.
그때부터는 그냥 상식과 체념이 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휴지로 닦아보려고 했는데, 휴지는 젖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닦는 것’이 아니라 ‘물과 한 몸이 되는 과정’이더라고요. 휴지가 바닥에 달라붙으니까, 제가 손을 빼는 순간 더 번지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급하게 방 한쪽을 정리해서, 물 떨어지는 곳 근처에 있는 전기장판이나 케이블 같은 걸 최대한 치웠습니다. 누수는 무섭고, 저는 더 무서웠어요. 특히 콘센트 쪽을 보는 순간은 진짜… 심장이 탁 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려고 전화번호를 찾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제 손이 더 빨라지더라고요. 뭔가 해결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전화 연결은 또 안 되고, 통화가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저는 그동안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초조함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어요. 한 번 떨어지고, 한 번 떨어지고… 그 소리가 거의 백그라운드 음악처럼 들리는데, 저는 그 음악이 너무 슬퍼서 밥 먹을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관리사무소에서 “지금 바로 오긴 어렵고, 사진 찍어서 보내달라”는 답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사진을 찍는데, 문제는 사진 각도였습니다. 물방울은 천장에서 떨어지니까 위를 향해야 하는데, 위를 향하면 배달이 보이고 배달이 보이면 배가 고프고… 아니, 이건 감정의 함정이더라고요. 그래도 참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 위층에도 혹시 샤워 중이었는지 조심스럽게 연락해봤습니다. 다행히 위층 분은 “밤에 수도 쪽에서 이상한 소리 나더니, 확인해보겠다”면서 바로 들어가 보겠다고 하셨어요.
그 와중에 치킨은 식고, 라면은 분노하며 기다리고, 저는 물과의 전쟁을 계속했어요. 제일 웃겼던 건, 물 받느라 여기저기 옮기다 보니 제 방이 갑자기 ‘임시 재난 대피실’ 같은 분위기가 됐다는 거예요. 테이블 옆에 비닐봉지, 바닥엔 휴지 더미, 한쪽엔 젖지 않으려고 포장지로 덮어둔 것들이… 솔직히 말하면, 이런 날에만 저의 정리 능력이 발동됩니다. 원래는 지저분해도 “내 스타일”이라고 우기는데, 물이 들어오면 그 우기가 바로 철회돼요.
그리고 마침내 누수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위층에서 원인을 찾고 조치했는지, 아니면 배관이 스스로 체념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물이 줄어드니까 저는 그때서야 배달을 먹어도 되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먹으려고 하니, 치킨이 너무 식어서 아쉬웠고, 라면은 이미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따뜻한 면의 미련’만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결국 치킨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무슨 주문처럼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번엔 누수 잡고, 다음엔 온도만 잡자.”
여운이 남는 건, 그날 이후로 제가 배달을 시킬 때마다 천장을 한번 더 보게 됐다는 거예요. 물론 누수가 매번 생기는 건 아니고, 그날만 운 나쁘게 겹친 거겠죠. 근데도 저는 아직도 “배달 도착했습니다” 알림이 뜨면,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봅니다. 세상은 참 공평하게도, 행복은 맛있고 재난은… 생각보다 빠르게 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치킨을 먹기 전에 한 번만 확인합니다. 천장, 오늘도 무사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