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 ‘편한 사람’이라고 들었을 때 속마음
“편한 사람”이라고 들은 날, 나는 대충 웃으면서도 머릿속에 자막이 켜지는 걸 느꼈다. 상대가 밥 먹고 집 가는 길에 툭 던진 말이었는데, 그 한 마디가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모르겠다. 편하다는 말이 칭찬 같기도 한데, 동시에 뭔가 통과도장 찍고 끝내는 느낌도 있더라.
그날 내가 가장 먼저 한 건 “고맙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고맙긴 했다. 같이 있으면 어색하지 않고, 마음이 편하고, 대화도 자연스럽고. 그런데 연애라는 게 원래 편안함만으로 유지되는 건 아니잖아. 편하다는 건 좋지만, 그게 전부면…? 나는 그 질문을 속으로만 계속 굴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내가 연락을 늦게 해도 화 안 내고, 내 템포에 맞춰주니까 좋다고 했다. 또, 싸울 때도 “그래서 너는 지금 무슨 의미로 한 말이야?”를 묻는 대신 “응, 알겠어”로 정리해줘서 편하다고 했다. 나는 그게 좋은 성격인 줄 알았는데, 듣고 나니까 갑자기 내 태도가 ‘문제 생기면 빨리 접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알람이 울렸다. 혹시 나는 연애를 ‘관리 모드’로만 하고 있는 건가?
문득 예전에 누군가가 해준 말도 떠올랐다. “너는 관계에서 안전장치 같아.” 그 말도 칭찬이었는데, 연애에서는 안전장치만으로는 부족하잖아. 불안해서가 아니라, 설렘이라는 게 원래 조금은 위험해야 생기는 건데. 나는 안전해서 좋은데, 위험해서 끌리는 건 못 하는 건가 싶어서 자꾸 자책하게 됐다. 편한 사람이라는 말이 달콤한 간식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처럼 느껴진 거다.
그리고 제일 신기했던 건,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만나면 웃고, 내 말에 반응하고, 약속도 챙기고. 그러니까 완전히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도 왜 나는 그렇게 불안했을까. 결론은 간단했다. 좋아하는데 “연애로서의 열”이 부족한 느낌. 나는 상대가 나를 사람으로는 좋아하지만, ‘서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확신은 덜한 것 같다는 감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이상하게 행동이 바뀌었다. 평소엔 그냥 넘어가던 농담도 더 웃어야 할 것 같고, 너무 편하단 소리가 나면 더 긴장감을 줘야 하나 싶고. 그런데 긴장감을 주려고 하면 또 내 말투가 부자연스러워졌다. 결국 상대는 “너 왜 갑자기 진지해?”라고 하더라. 그 말 듣고 더 웃겼다. 내가 진지해진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잃어버린 거였으니까. 편한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 않아서 애썼는데, 그 애씀마저 ‘편함을 깨는 행동’으로 보인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며칠 지나고 상대가 또 비슷한 말을 했다. “난 너랑 있으면 편해서 좋아. 다른 사람 만나면 또 생각이 많아지잖아.” 그 말 자체는 되게 인간적이고 솔직했다. 근데 내 마음은 계속 꼬였다. ‘편하다’는 건 상대가 나를 쉬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잖아. 사람은 쉬고 싶을 때 상대를 찾는다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 위로일 때도 있잖아. 물론 나도 힘들 때 누군가를 찾는다. 그런데 연애에서만큼은, 위로가 아니라 선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한 번 물어봤다. “나를 편하다고 느끼는 건 좋은데, 너는 나랑 있으면 어떤 감정이 제일 커?” 상대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편안하고, 고마워서 좋지”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크게 실망한 건 아닌데, 희미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지만, ‘설레는 이유’를 말해주진 못하는 거니까. 연애는 결국 감정의 언어가 다르더라. 편안함은 오래 가지만, 열정이 없는 편안함은 어느 날 갑자기 식어버린다. 나는 그 가능성을 너무 빨리 봐버린 것 같았다.
다음 데이트부터 나는 솔직해졌다. 편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웃으면서도 “편한 건 맞는데, 나는 설레는 것도 원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상대가 “야, 갑자기 왜 그걸 말해” 하면서 웃더라. 근데 그 웃음이 너무 부드러워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우리 둘 다 감정을 숨기지 않게 됐으니까.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편함’만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서로에게 궁금한 걸 더 자주 묻게 됐다. 대단한 해결책은 아니었는데, 말 한 번으로 공기가 달라지더라.
결론적으로, “편한 사람”이라는 말은 나를 깎아내리는 단어가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같았다. 다만 표지판은 그 자체로 목적지가 아니라는 걸, 나는 늦게 배운 거지. 지금도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한 번 콩 하고 내려앉는데, 대신 예전처럼 혼자 자책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안다. 편한 사람이어도 연애는 할 수 있고, 설레는 사람이어도 다정할 수 있다는 걸. 그러니까 다음에 또 누가 “너는 편하다”라고 말하면, 나는 고맙다고만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덧붙이려고 한다. “그럼, 설레는 쪽도 같이 해줄래?”… 상대가 웃으면 그게 답이고, 상대가 말문이 막히면 그때도 나는 내 속마음을 알아챌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