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면서 가장 비싼 건 결국 택배 박스
자취하면서 가장 비싼 건 결국 택배 박스예요. 처음엔 “아니, 뭐가 제일 비싸?” 하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월세, 공과금, 장보기… 다들 순서대로 오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일 값비싼 게 박스더라고요. 심지어 저는 택배를 ‘받기만’ 했지 ‘돈 주고 산 적’은 없거든요. 그런데도 왜인지 계속 돈이 빠져나가요.
처음 자취 시작할 땐 겁도 없이 살았어요. 집에 도착하면 택배 박스는 바닥에 툭, 물건은 꺼내서 바로 정리. “나는 깔끔한 사람이다” 같은 착각도 있었죠. 근데 문제는 다음 날이에요. 택배 박스가 다시 제 앞에 서 있거든요. 마치 “너 어제 나 안 버렸지?” 하는 표정으로. 저는 그날부터 박스랑 동거하게 됩니다.
동거는 생각보다 비싸요. 첫 번째 비용은 공간. 자취방은 원래부터 넓지 않잖아요. 박스를 쌓아두면 그 공간이 전부 잠식돼요. 한 박스는 괜찮아요. 두 박스도 괜찮아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책장 위에 박스가 올라가고, 의자 옆에 박스가 대기하고, 심지어는 세탁 바구니 옆에까지 박스가 자리 잡습니다. 그때 깨닫죠. ‘이건 물건이 아니라 공간을 사는 방식이었구나’라고요.
두 번째 비용은 처리. 택배 박스는 생각보다 귀찮게 사람을 몰아붙입니다. 일반 쓰레기처럼 훅 버리면 되면 모르겠는데, 종이류는 또 분리수거 규칙이 있어요. 테이프 떼고, 테이프 버리고, 박스 접고, 내용물 정리하고… 진짜로 “한 번 버리려면 일이 두 개”가 생겨요. 그러다보면 어느새 택배를 받는 순간보다 버리는 순간이 더 스트레스가 됩니다. 저는 버릴 때마다 뭔가를 해낸 기분이 아니라, 뭔가를 잃는 기분이 들어요.
세 번째 비용은 마음. 박스가 쌓이면 마음이 같이 쌓여요. 청소할 때마다 박스부터 치우게 되거든요. 원래 청소는 ‘바닥을 깨끗하게’ 만드는 건데, 자취를 하다 보면 청소가 ‘박스를 피해가는 과정’이 됩니다. 그래서 청소가 미뤄져요. 미뤄지면 또 더 쌓이고요. 그럼 “내가 게을러서 그래”가 아니라 “박스가 나를 지배한다” 쪽으로 정신승리하게 돼요.
그리고 진짜 핵심은 이거예요. 가장 비싼 건 박스 자체가 아니라, 박스 때문에 생기는 추가 지출. 저는 어느 날 장을 보다가 깨달았어요. “아, 내가 결국 다 사는 이유가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였구나.” 결국 수납장, 정리용 박스, 이사방지용 스티커, 테이프 커터, 쓰레기봉투… 이런 것들이 하나씩 들어옵니다. 그때부터는 택배 박스가 저한테 ‘포장비’ 말고 ‘소비 유도비’를 청구하는 느낌이 들어요.
심지어 박스는 크기가 다양하잖아요. 작은 박스는 귀여운 편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 키만 한 박스도 옵니다. 그럴 때마다 “이건 뭐지?” 하고 열어보면, 보통은 생각보다 가벼운 물건이 들어있어요. 대신 박스가 너무 커서 처리가 더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그 박스를 버릴 때마다 ‘내가 이걸 산 게 맞나?’ 싶은 기분이 들어요. 물건 가격보다 버리는 비용이 더 큰 것 같아서요.
또 한 번은 이런 사건이 있었어요. 택배 박스가 너무 많아져서 분리수거하는 날을 놓친 적이 있거든요. 그 다음날 아침에 문 열면 복도에 종이 냄새가 나요. 냄새라기보단 “종이가 오래돼서 나는 그 특유의 느낌”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됩니다. 옆집 이웃이 문 앞에 무언가를 놓고 가는 순간, 저의 박스 탑이 시선에 들어가요. 그날 이후로 저는 박스를 그냥 ‘물건 포장’이 아니라 사회적 체면 비용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저는 계속 택배를 시키게 돼요. 왜냐면 편하니까요. 인터넷 쇼핑은 손가락만 움직이면 끝나잖아요. 그런데 편함의 대가가 박스 형태로 돌아오는 거예요. 결제할 때는 카드가 가볍게 결제되고, 다음날 방은 무겁게 변합니다. 저는 그 차이를 보면 참 웃기더라고요. 통장에서는 “결제 완료”가 찍히는데, 집에서는 “박스 도착”이 찍히는 기분이라서요.
결국 결론은 이거예요. 자취하면서 가장 비싼 건 택배 박스입니다. 돈도 돈인데, 공간이랑 시간, 그리고 마음을 동시에 갉아먹어요. 그런데 웃긴 건, 어느 순간 박스가 익숙해진다는 거예요. 박스가 쌓이면 “아 오늘도 나 바빴구나”처럼 느껴져요. 오늘도 택배가 오고, 저는 내일 또 분리수거를 계획하겠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는 박스 접는 손이 빨라지고…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제가 돈을 번 게 아니라, 박스를 잘 접는 사람이 됐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