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내 자취생 쿠폰을 대신 써버린 썰
어느 날부터 우리 집이 ‘자취생 쿠폰’을 하나의 통화처럼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자취하면서 배달 앱 할인 쿠폰을 모아두는 스타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 쿠폰이 제 손을 떠나더니 가족 단톡방에서 “오늘은 누가 쓰지?” 같은 말이 돌더라고요.
사건의 시작은 평범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배달 앱을 켜는데, 제가 저장해둔 쿠폰이 몇 장이나 비어 있었어요. 처음엔 “내가 어제 실수로 쓴 건가?” 싶어서 사용 내역을 봤는데, 지역이 딱 우리 집이 아니라 제 자취방 반경이랑 일치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주문 시간은 제가 집에 없던 시간대였고요.
그래서 저는 멘붕이 와서 바로 가족에게 확인 전화를 돌렸죠. 엄마가 “뭐 쿠폰? 아 그거 말이지” 하더니, 전혀 미안한 느낌 없이 “너 자취한다며. 대신 쓰면 되지 않니”라는 말을 하셨어요. 저는 그 순간 ‘가족은 왜 이렇게 모든 걸 공유 자원으로 취급할까’ 싶었습니다.
아빠는 더 과학적이었어요. “우리가 너 쿠폰 쓰는 건 아니고, 쿠폰이 너를 위해 자동 발행되는 거지. 우린 그걸 관리해준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더라고요. 저는 “자동 발행이면 왜 제 주문 내역에 우리 가족이 주문한 음식이 뜨냐”고 묻자, 아빠가 잠깐 뜸 들이더니 “그건… 우리가 필요한 걸 사서 먹은 거지”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에 결정타가 있었는데, 동생이 “형 쿠폰이 남아 있길래 우리 거로 시켰어”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순간이요. 저는 순간적으로 목이 탁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동생은 “형이 자취하니까 형 생각해서 쓴 거야. 그리고 할인 받았잖아? 이게 효율이지”라고 말했는데, 그 효율이 제 생활비를 깎아먹는 효율이라는 걸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경고’ 모드로 들어가서, 다음부터는 가족에게 쿠폰 공유를 금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럼 너도 우리 쿠폰 쓰지 마. 생일 때 쿠폰은 받아서 쓰는 거잖아”라며 되받아쳤어요. 저는 그때 알았죠. 이 집에서는 대화가 설득이 아니라 ‘적립’이라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걸요. 제가 한마디 할수록 빚이 늘어나요.
더 웃긴 건, 가족들이 쿠폰을 쓰는 방식이 정교하더라고요. 엄마는 “배달이 빨리 오는 가게로 해야지, 자취생은 바쁘니까”라며 배달 시간까지 따졌고, 아빠는 “너네 동네는 배달비가 비싸니까, 그 쿠폰이 더 이득인 날에 써”라고 계산하는 척을 했습니다. 저는 ‘가족이 내 생활을 돕는다’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목적이 ‘할인’이라는 걸 깨달았죠. 도와주는 척하면서 본인들이 제일 기뻐하는 타입.
결국 저는 사소한 통제 수단을 만들었어요. 쿠폰 화면이 보이지 않게 앱을 숨기고, 결제 수단을 바꿔서 승인 없이는 결제가 안 되게 설정했거든요. 그런데 이걸 또 가족이 “우리가 몰래 쓰는 걸 들켰다” 같은 분위기로 받아들이더니, 다음 날부터는 배달 앱이 아니라 편의점 모바일 쿠폰으로 넘어갔어요. 더 교묘해진 겁니다.
그 와중에 가장 치명적인 건, 제가 자취하면서 혼자 먹으려고 모아둔 ‘마음의 비상식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컵라면이 사라지고, 냉동만두가 바닥나고, 심지어 제가 마지막에 남겨둔 치킨 너겟까지 흔적이 없더라고요. 저는 단서를 찾다가 냉장고 문에 붙은 메모를 봤는데, 거기에 딱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쿠폰은 네 거, 맛은 우리 거. 다음엔 너도 우리 쿠폰 써줘 :)”
그 이후로 저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족이 쿠폰을 ‘대신 써버리는’ 건 단순 절도라기보다, 이 집의 문화예요. 공유, 효율, 그리고 각자 정당화. 그래서 요즘은 쿠폰을 모으는 걸 포기하고, 그냥 매달 가족 단톡방에 “이번 달 쿠폰은 테스트용으로 다 쓸 거예요”라고 공지해버립니다. 그러면 가족들도 더는 제 눈치를 안 보더라고요. 덕분에 저는 쿠폰이 사라지는 걸 덜 충격적으로 맞게 됐고… 대신 제 자취방은 완벽하게 ‘가족이 잠깐 들르는 집’이 됐습니다. 쿠폰은 할인받고, 저는 관계는 더 할인받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뭐, 어차피 혼자 살아도 집은 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