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유머/짤방 유머 추천 0

가족 모임에서 내 몫 반찬이 제일 빨리 사라짐

2026-09-27 15:41:11 조회 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가족 모임 날이면 늘 같은 일이 반복된다. 나는 분명히 “내 몫 반찬은 저 앞 접시에 담아두세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반찬은 이미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문제는 그게 그냥 운이 아니라, 우리 집엔 은근히 “반찬 속도전” 종목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거다.

처음엔 나도 웃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빨리들 집어가겠어?” 싶어서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엄마가 수저로 공기처럼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내 반찬이 어느 새 바닥을 드러내더라. 옆에서 이모가 “어머, 이거 맛있네?” 하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한 입이 사라진다. 나는 그저 멍하니 접시를 바라보다가, 결국 내 몫 반찬이 내 손에 오기 전에 가족 회의가 먼저 끝난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올해는 작정했다. 식탁에 앉자마자 시선을 고정하고, 내 반찬은 내가 직접 덜어 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거다. 큰아버지가 “맛있게 먹어야지~” 하시면서 내 반찬 쪽으로 접시를 살짝 돌려주신다. 돌려준 건 좋은데, 그 타이밍이 늘 내가 젓가락을 들기 0.3초 전이다. 나는 그걸 ‘운’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정확하다고 느꼈다.

이번엔 아예 표식을 붙였다. 내 반찬 위에 작은 김 조각을 올려서 “이건 내 거”라고 표시해놨다. 근데 그 순간부터 표시가 아니라 퀴즈 문제가 돼버렸다. 삼촌이 “어? 저 김은 뭐야?” 하면서 김을 집더니, 뒤이어 반찬도 따라오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가족들은 표식을 보면 본능적으로 “아, 이건 특별한 거구나”를 실행한다. 결국 김은 내 것이 아니게 됐고, 반찬도 같이 종적을 감췄다.

가장 억울한 건,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도 “오해”를 만들어낸다는 거다. 엄마가 “아까 네가 저거 먹는다고 했잖아”라고 하시는데, 그 ‘저거’가 범위가 너무 넓다. 내가 지정한 건 특정 반찬 한 접시였고, 엄마는 “반찬이 다 맛있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걸로 알아서 드세요”라는 말로 그 범위를 확장했다. 그러니까 내가 고른 건 ‘정답’이 아니라 ‘추천’이 된 거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데, 가족은 늘 “조금만 먹어도 돼”를 던진다. 누가 첫 입을 먹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연쇄 반응이다. 누나가 “나도 맛만” 하고 한 숟갈 넣고, 아빠는 “응, 맛있다” 하면서 젓가락을 더 길게 뻗는다. 그러다 보면 내 몫 반찬이 ‘내 몫’에서 ‘다 같이 나눠먹는 반찬’으로 승격된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면서도 손을 못 뻗는 게, 괜히 싸우고 싶지 않아서다. 대신 속으로만 아, 또 졌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마지막 카드로 ‘협상’을 시도했다. “이번엔 내 반찬 남겨주세요. 저 이거 오늘 꼭 먹어야 해요”라고 말했더니, 다들 순간 정색했다. 그러더니 엄마가 “그래, 그럼 네가 먹기 편하게 덜어주자” 하신다. 덜어주는 건 좋은데, 덜어주신 접시가 내 앞이 아니라 이모 앞에 내려간다. 이모가 “어머, 고마워” 하면서 받아버리는 그 찰나에 나는 깨닫는다. 가족은 협상을 하지만, 나는 협상의 룰을 모르는 상태였다는 걸. 룰이 있긴 있었는데, 내가 읽지 않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결국 먹는다. 다 먹어버린 반찬의 ‘다음 흔적’을. 반찬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건 바닥에 끈적하게 남은 양념 자국과, 누군가가 대충 훑고 지나간 자잘한 조각들이다. 나는 그걸 수저로 긁어 모으는데, 그 모습이 또 웃기다. 마치 고고학자처럼 “여기서부터 이 반찬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겠는데?” 같은 표정을 짓게 된다. 가족들이 그걸 보면 다들 웃는다. 웃으면서도 내 몫은 계속 사라진다. 이상하게도 내 반찬은 늘 ‘웃음의 속도’로 사라진다.

결국 모임이 끝날 때쯤,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내 몫 반찬이 빨리 사라지는 이유는 가족이 날 속이기 때문이 아니라, 반찬 자체가 먼저 도망가서 우리 모두를 끌고 가는 것이라는 거다. 다음엔 아예 반찬을 먹기보다 “반찬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추적하는 날”로 정해야겠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내가 질 게 아니라, 반찬이 먼저 나를 관찰하는 걸로 끝나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젓가락을 들면서 마음속으로 주문한다. 이번엔 반찬아, 잠깐만 숨 쉬고 있어줘.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