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님이 비상등 켜고 기다린 이유
배달기사님이 비상등 켜고 기다린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요. 저도 처음엔 “아, 또 교통법규 어기고 버티시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날은 그냥 평범하게 주문하고 밥 기다리는 날이었는데, 골목 안에서 이상하게 시간이 늦게 흘렀습니다.
주문은 저녁 피크 시간이라 배달 앱에서 ETA가 좀 길었어요. 그런데 기사님이 “5분만요”라고 알림을 보내더니, 배달 위치가 아니라 다른 쪽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셨어요. 문제는 그 자리에서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비상등을 딱 켜고 계속 기다리시더라는 거예요. 저는 차가 고장 난 건가 싶어서 휴대폰을 들여다봤죠.
배달 위치까지는 걸어서 1분이면 될 거리였는데, 기사님은 문득 문자를 한 번 더 보내더라고요. “주차한 자리에서 바로 못 들어가요. 잠깐만요.” 이 말 듣고도 ‘어차피 들어오면 되지’ 싶었는데, 그 다음이 더 웃겼습니다. 골목에 바람이 불더니, 차 옆에 작은 천막 같은 게 덜컥거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거든요.
기사님이 차에서 내리진 않았는데, 그때도 비상등은 계속 켜져 있었어요. 저는 ‘아, 위험하니까 차를 눈에 잘 띄게 하려는 건가?’ 싶어서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가 그 골목을 오가던 주민 한 분이 지나가면서 손짓을 하더니, 기사님 쪽으로 다가와서 잠깐 말도 걸었어요. 그 장면이 “뭐야, 정차해서 기다리는 이유가 따로 있네”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잠깐 후에야 제가 알게 됐는데, 그 골목 입구가 원래 대각선으로 꽤 좁고, 옆에 공사 자재가 잠깐씩 비스듬히 쌓이는 구간이 있더라고요. 비상등을 켜면 뒤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사람도 “아 여긴 조심 구간이네” 하고 눈치 채요. 기사님이 급하게 들어가다 부딪히는 사고가 종종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비상등은 그냥 간지용이 아니라, ‘여기 잠깐 위험하니까 같이 조심하자’는 시그널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게 있었어요. 저희 집 쪽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은 주차 차량이랑 포장 경계가 겹치는 구간이 있었는데, 그날 누가 대충 정차를 해놨더라고요. 기사님 차는 들어오려면 후진을 짧게 해야 했는데, 후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시점에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답이 없거든요. 그래서 기사님이 “잠깐만요”를 반복하면서도, 그냥 뛰어오지 않고 기다린 거였어요.
전 사실 그때 “기사님이 늦어서 비상등 켜놓고 버티는 건가?”라고 단정할 뻔했는데, 막상 배달이 도착하고 나서 이야기 들으니 달라지더라고요. 기사님이 문앞에 오자마자 하시는 말이 “아까 잠깐만요 한 이유는요, 뒤차가 계속 붙어서요. 여기서 무리하게 움직이면 사람 다칠 수 있어서요.” 그리고는 덧붙이더라고요. 비상등을 켜면 뒤에 있는 분들이 자동으로 속도를 낮추고, 차선도 ‘아 여기 작업 중이구나’ 하고 인식하니까요. 솔직히 그 말 듣고 나니까, 제가 너무 성급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주문한 건 짜장면이었고, 비가 조금 오락가락해서 면 상태가 걱정됐는데, 기사님은 “면 괜찮게 도착하게 하려고요”라고만 하셨어요.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는 동안 식지 않게 내부적으로 뭔가를 조정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제가 저도 모르게 “그럼 비상등이랑 기다림이 결론이었네요?”라고 물어봤고, 기사님은 웃으면서 “결론이죠. 안전이 먼저고, 도착은 그 다음입니다.”라고 하셨어요.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배달은 “빨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느끼잖아요. 근데 어떤 날은 빨리 움직이려다 위험해질 수 있으니, 기사님은 오히려 속도를 늦추면서 상황을 정리한 거예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배달기사님들이 비상등을 켜는 행동을 ‘무언가를 못해서’가 아니라 ‘사고를 막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체감했어요. 다음에 배달 늦어지면, 저도 앱만 새로고침하지 말고 주변 상황부터 한 번 더 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 저녁, 집 앞에서 작은 바람 소리가 한 번 더 나더니 천막이 똑바로 펴지더라고요. 비상등은 꺼지기 직전까지 켜져 있었고, 기사님은 제 짜장면을 받자마자 “드세요!” 한 마디만 남기고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한 입 먹고 나서야 깨달았죠. 그 비상등은 “나 여기 있어요”가 아니라 “아, 너도 여기 조심해” 같은 말이었던 거라고요. 어쩌면 배달의 진짜 팁은 맛이 아니라, 안전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