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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괜찮아’가 제일 위험한 말이 됨

2026-10-03 20:41:11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회사에서 팀장님이 회의 시작하자마자 “다들 괜찮아?”라고 물으신 날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괜찮아’라는 말이 제일 위험한 단어라는 걸 직감했어요. 솔직히 “네, 괜찮아요”가 무슨 문제겠어요. 근데 그날은 묘하게 분위기가 딱딱했고, 사람들 표정이 다들 같은 각도로 굳어 있더라고요.

먼저 후임이 보고를 시작했는데, 자료에 숫자가 하나 틀려 있었어요. 크게 틀린 건 아닌데, 그래도 표기 단위가 섞여서 한 번만 보면 티가 나는 정도였죠. 후임은 “죄송합니다, 제가 단위를 착각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팀장님이 손을 탁 내려놓더니 편안한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아”를 연달아 두 번 하셨어요. 그 순간 후임의 어깨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굳는 느낌이랄까요.

그 다음에는 기획팀 사람이 “근데 이 일정이요, 사실상 마감에 걸릴 것 같긴 합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그러자 팀장님이 다시 한 번 웃으면서 “야, 괜찮아. 우리가 다 해봤잖아”라고 했죠. 이때부터 ‘괜찮아’가 위로의 말이 아니라, 면허 없는 운전이 시작되는 신호처럼 느껴졌어요. 다들 반박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이니까요.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괜찮아’는 계속 굴러다녔습니다. 누가 보고서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면 “괜찮아, 나중에 정리할게”라고 하고, 누가 일정 조율을 말하면 “괜찮아, 아직 시간 있어”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그 ‘나중에’와 ‘아직’이라는 단어들은 늘 어딘가로 증발하더라고요. 문서가 쌓이는 속도만큼 해결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사고가 났습니다. 외부 업체에 보낼 버전이 잘못 나가서, 담당자가 전화가 오자마자 하얗게 질려서는 제 앞에 종이 한 장을 던졌어요. “이거… 우리가 낸 거 맞아요?”라고 묻는데, 그 종이 위엔 “정정 요청드립니다”가 찍혀 있었죠. 저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고, 바로 팀장님께 연락을 하려다가 팀장님이 먼저 오셨어요.

팀장님은 종이를 보시더니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아주 태연하게 “괜찮아”라고 말하셨어요. 정확히는 “괜찮아. 이런 거 한 번쯤 있는 거지”였어요. 저는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더 화가 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죄송합니다, 확인하겠습니다’ 같은 말을 먼저 하잖아요. 근데 팀장님은 마치 이 상황이 이미 계획된 이벤트인 것처럼 말씀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회사의 ‘괜찮아’는 세 단계 패턴으로 굳어졌어요. 첫 번째는 “괜찮아, 큰 문제 아니야” 단계. 두 번째는 “괜찮아, 절차대로 하면 돼” 단계. 세 번째는 “괜찮아… 너만 하면 돼” 단계인데, 이 마지막이 진짜 무서운 거예요. 마지막 단계로 가면, 누가 봐도 책임이 옮겨 붙는 타이밍이 딱 정해져 있거든요.

저는 그래서 회의 때마다 ‘괜찮아’를 들으면 자동으로 계산기를 켜기 시작했어요. ‘괜찮아’가 나오면 바로 이어질 질문이 뭐지? “어차피 다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가 다시 정리해” “내가 대신 말해줄게” 이런 말들 있잖아요. 사람 마음이란 게, 위로가 아니라 예고편을 들을 때 더 빨리 피곤해지더라고요. 괜찮아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올 때마다, 제 마음속에는 이미 엑셀 칸이 늘어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진짜 웃긴 건, 팀장님이 ‘괜찮아’라고 말한 날엔 대부분 시간이 더 없었다는 점이에요. 마감이 빨라지고, 보고는 늘고, 갑자기 협업 상대 일정이 바뀌고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서로에게도 “괜찮아?”라는 말을 쓰게 됐습니다. 누가 실수하면 “괜찮아”로 덮고, 누가 계획이 틀어지면 “괜찮아”로 밀고, 누가 밤새 수정하면 “괜찮아”로 칭찬하는 거죠. 결국 회사 전체가 ‘괜찮아’라는 단어로 진화해버린 느낌이었어요.

며칠 전에는 제가 후배한테 실수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는데, 후배가 피식 웃더니 “선배님, 저희 팀은 괜찮아로 다 해결하잖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맞아요. 괜찮아는 문제를 해결하는 말이 아니라, 문제를 다음 사람 일정으로 옮기는 말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회의 때 팀장님이 “다들 괜찮아?”라고 물으시면, 속으로만 대답해요. ‘예… 괜찮아요. 다만 제 주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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