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면서 배달 대신 직접 만들다 망한 날
자취하면서 배달 대신 직접 만들다 망한 날, 그날은 “나 이제부터 건강하게 살 거야” 같은 거창한 다짐으로 시작했어요. 전날도 엄청 잘 먹었는데, 왠지 또 기름지고 달달한 걸 시키면 내 인생이 배달앱 포인트로만 굴러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냉장고를 열어보며 당당하게 말했죠. “오늘은 내가 요리사다.”
문제는 냉장고가 착한 편이라 재료가 다 있다는 착각을 했다는 거예요. 양파, 마늘, 대파 조금, 계란, 그리고 ‘언젠가 해먹겠지’ 싶었던 소스 한 병. 대충 그걸로 파스타나 볶음면 같은 거 만들면 되겠지 싶었는데, 막상 레시피를 찾으려 하니까 제일 먼저 보는 게 “기름 2스푼” 같은 표현이더라고요. 자취생한테 기름 2스푼은 거의 운명 같은 숫자예요. 계량컵도 없고, 스푼이 정확하지 않으면 그건 요리 실패의 시작이거든요.
그래도 저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물 끓이고 면 삶고, 팬 달구고, 소스 넣으면 끝. 딱 이 루트라 생각했는데, 가열 시작하고 3분쯤 지나니까 냄새가 이상하게 올라오더라고요. “어? 마늘 탄내?” 하는 순간, 이미 늦었어요. 저는 마늘을 다져놓은 걸 넣는 게 아니라, 마늘을 그냥 “대충” 넣었습니다. 대충의 결과는 대충이 아니라, 실패의 정교함이었어요.
면은 면대로 퉁퉁해졌고, 팬에서는 소스가 갑자기 뻑뻑해지더니 뭔가가 치직거리며 벽면으로 튀기기 시작했어요. 자취방 벽은 원래 청소를 전제로 만들어진 게 아닌데, 오늘은 확실히 청소를 전제로 재설계된 것 같았죠. 저는 휴지로 닦아보려다 더 번져서, 물기 있는 휴지로 문지르면 “더 요리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결국 맛은… 뭐랄까, 설명하기가 애매해요. 처음엔 짭짤했는데 뒤로 가면 달고, 또 끝으로 가면 씁쓸해요. “아 이게 바로 퓨전이지”라고 합리화하려 했지만, 제 입은 이미 알고 있더라고요. 냉장고 구석에 있던 소스가 사실은 스테이크 소스가 아니라 매운맛 베이스였던 거예요. 유통기한은 넉넉했는데, 자취생한테 넉넉함은 오히려 함정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플랜B를 꺼냈죠. 계란을 풀어서 뭐라도 살려보겠다는 전략이었어요. 그런데 계란도 “대충” 준비했더니, 흰자는 덩어리로 뭉치고 노른자는 너무 빨리 익는 이상한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제 요리 실력을 비주얼로 보여주는 것처럼요. 소스가 너무 진해서 계란이 잘 섞이지도 않았고, 스푼으로 저을수록 팬 바닥에 눌어붙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그 소리가 진짜로 “너 이제 끝났다”는 말 같았어요.
그때부터는 살기 게임처럼 진행됐어요. 숨 고르고 물 조금 넣어보자, 설탕 아주 조금, 소금도 아주 조금. 그런데 자취방에 있는 조미료는 다 “아주 조금”을 버티지 못하고 넘어가더라고요.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않는 맛의 궤도가 되어서, 결국 제가 만든 건 파스타도 아니고 볶음도 아니고, 그냥 갈색 스튜 같은 무언가가 됐습니다. 먹기엔 뭔가 아깝고, 버리기엔 또 너무 오래 했고… 그래서 저는 결국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말았어요. 제 위장이 “오늘도 너의 선택은 존중한다” 같은 표정이었겠죠.
다 먹고 나서 손을 씻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진짜 멘탈이 털렸어요. 팬에서 나는 잔향이 싱크대까지 퍼져 있었고, 주방 타일은 기름막처럼 반짝이는데 닦을수록 더 번들거렸어요. 창문을 열어도 냄새는 계속 붙어있고, 결국 저는 세제 더 붓고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그러다 손목이 뻐근해지는데, 그때 떠오른 게 “오늘 배달이면 이렇게까지 안 했는데”였어요. 배달은 실패해도 설거지는 덜하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실패가 설거지까지 이관됐습니다.
밤이 되고 나서 혼자 앉아 생각했죠. 자취하면서 배달 대신 직접 만들다 망한 날이란 타이틀은, 사실 요리 실력이 아니라 제 마음가짐이 문제였던 거예요. 레시피는 칼같이 따라야 하는데, 저는 칼 대신 대충 손가락에 의지했고, 재료는 있었지만 순서가 틀렸고, 냄새는 결국 방 전체의 기억으로 남았으니까요. 그래도 웃긴 건, 다음날 아침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젯밤 소스가 조금 남아 있더라고요. 전 그걸 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다음엔 진짜 레시피부터 읽자.” 그리고… 이미 알죠. 다음에도 또 대충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걸요. 그래도 오늘만큼은 내 위장과 내 주방이 한 팀이 되어 ‘다음엔 덜 망하자’고 합의한 것 같아서, 이상하게 기분이 괜찮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