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유머/짤방 유머 추천 0

배달 오기 전에 이미 냉장고 문을 열어버림

2026-10-06 05:41:09 조회 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배달 오기 전에 이미 냉장고 문을 열어버림. 이게 뭐 대단한 사고냐 싶겠지만, 저는 “배달 기다리는 동안 뭘 좀 꺼내 준비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그날 저녁 내내 멘탈을 냉장고처럼 차갑게 유지하게 됐습니다.

일단 상황은 단순했어요. 앱에서 배달 주문을 넣고, 결제 누르고, 배달 예정 시간 뜨는 거 보면서 “아, 20분만 참으면 된다” 하고 있었죠. 그런데 배고픔이란 게 원래 성격이 급합니다. 특히 저는 배달 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는 타입이 아니라, ‘한 입만’ 먹고 시간을 버티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냉장고를… 연 겁니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이미 게임 끝이었어요. 차갑고 하얀 조명이 제 얼굴을 비추는데, 머릿속에서는 갑자기 레시피가 막 튀어나오더라고요. “아, 간단하게 계란 하나 삶아서 곁들이면 맛있겠다.” “아니야, 김치랑 같이 먹으면 되지.” “아, 마요네즈 없지 않나?” 이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조합을 만들면서요.

문제는 냉장고를 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냉장고를 열었으면 닫아야 하는데, 닫는 게 귀찮더라고요. 그냥 계속 열고 확인해요. 손은 알아서 도어를 잡고, 눈은 안에서 돌아다니고, 머리는 이미 ‘배달 음식’보다 ‘냉장고 재고’를 우선순위로 올려놓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게 아니라, 음식 앞에서 시간이 그냥 증발해요.

저는 결국 냉장고 문을 연 지 10분도 안 돼서, ‘배달 기다리며 먹을 거’를 현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계란을 찾고, 김치를 꺼내고, 남아있는 치즈 조각도 찾고, 그 치즈가 있는 칸을 또 열어보고… 뭐랄까, 냉장고가 제 손님을 받아들이는 중인 느낌이랄까요. “어, 오셨어요? 저희 오늘도 손님 드실 거 준비됐습니다” 같은.

그때 앱 알림이 울렸어요. 배달원 도착 3분 전. 저는 그 순간 멈칫했죠. 배달 왔는데 지금 내가 뭐 하는 중이지? 냉장고를 열어놓은 채로요? 손에는 김치 집게, 머리엔 방금 전까지의 확신이 다 사라지고 공포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냉장고 문을 부랴부랴 닫았는데… 그 닫는 소리가 또 이상하게 크게 들리더라고요. 마치 “삐—” 하고, 제 결정을 스스로에게 보고하는 소리처럼.

현관문 열기 전에 이미 손가락이 간장 냄새를 맡고 있었어요. 그리고 도착한 배달은 분명 뜨겁고 맛있어야 하는데, 제 손과 제 몸은 이미 냉장고에서 맛을 보고 온 상태입니다. 배달 음식을 받자마자 첫 입을 먹으려는데, 이상하게도 맛이 덜 고급스럽게 느껴져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세상에 음식은 항상 내가 배고플 때 가장 맛있는 법인데, 저는 이미 배고픔을 냉장고로 처리해버린 겁니다.

더 웃긴 건 그 다음이에요. 다 먹고 나서도 계속 남는 게 있잖아요. 계란 남은 거, 김치 조금 남은 거, 치즈는 거의 티끌 수준. 저는 “이건 내일도 먹지 뭐” 하고 냉장고 문을 다시 확인하려다가, 또 멈췄습니다. 지금 제가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습관이 배달 속도보다 빠르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날 느낀 교훈은 딱 하나였어요. 배달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참는 연습’이다.

그래도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배달이 오기 전에 이미 냉장고 문을 열어버린 사람이라, 그날 저녁의 결말은 대충 이런 느낌이었어요. 배달원은 정시에 도착했고, 저는 정시에 망했으며, 냉장고는 제 충동을 조용히 받아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앱에서 배달 예정 시간이 뜨면, 본능적으로 냉장고 문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참 신기하죠. 배달은 도착하기 전이고, 후회는 항상 먼저 도착합니다.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