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 상대가 늦는 이유를 나 때문에 알게 됨
연애에서 상대가 늦는 이유를 나 때문에 알게 됨. 진짜 내 탓인가 싶어서, 그날부터 “내가 뭘 잘못했지?”를 하루 종일 자문자답했어.
처음엔 그냥 평범하게 늦는 사람인 줄 알았지. 약속 시간 10분 지나도 “나 곧 도착”만 오고, 20분 지나면 “길이 막혀서” 같은 말이 오고.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가끔 톡을 보고 멀뚱멀뚱 시간만 세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기다림이 습관처럼 몸에 배기 시작했어.
상대는 연애 초반엔 되게 다정했어. 늦으면 미안하다고 말도 했고, 대신 카페에서 디저트 같은 걸 꼭 사 오더라. 그래서 나는 “그래, 사람이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 근데 이상하게도 만날 때마다 상대가 앉는 자세가 똑같았어. 들어오는 순간 잠깐 벽 쪽을 보고, 그 다음에야 반대편 자리로 천천히 앉는 거야.
그래서 어느 날은 장난처럼 물어봤지. “너 원래 오면 자리부터 확인하고 앉아?”라고. 상대가 웃더니 “그냥… 불편해서”라고 둘러댔어. 나도 그때는 그냥 ‘사람마다 습관이 있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그 “불편”이라는 말이 자꾸 머리에 남더라.
그러다 결정적으로 내가 눈치챈 날이 왔어. 그날은 비가 와서 택시를 타자마자 상대가 “우산 챙겼어?” 하고 물었거든. 나는 “응, 너도 가져”라고 했고, 상대는 “응” 하고 고개만 끄덕였지. 근데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상대가 갑자기 우산을 찾느라 한참을 헤매는 거야. 가방을 뒤지고, 손에 든 걸 확인하고, 또 다시 가방을 뒤지고… 그러다 결국 한숨을 쉬더라.
“어? 나 우산을… 집에 두고 왔나 봐.” 그 말이 나오자마자, 상대 표정이 평소보다 더 미안해 보였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 행동이 더 컸지. 바로 주변을 훑고, “여기 비 오면 저기 편의점 쪽으로 우산 사러 가야겠다” 같은 말을 하더라고. 말은 단순한데, 동선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그게 단순한 우산 때문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
그때 나는 갑자기 떠올랐어. 내가 예전에 톡으로 “나 오늘 비 올 것 같아서 우산 챙겼어?”라고 물었던 적이 있잖아. 상대가 그때 “응 챙겼어!”라고 답했는데, 사실 그 순간 상대는 ‘우산’보다 다른 걸 확인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거든. 그래서 내가 멈칫하고 물어봤어. “근데 너 가끔 늦는 날 있잖아. 그때… 우산 찾느라 늦는 거야?”
상대가 그제야 조용히 웃더니, 진짜로 솔직하게 말했어. “응. 근데 우산이 아니라… 네가 ‘우산 챙겼어?’라고 물어보던 날 이후로, 나는 약속 장소 가기 전에 손목시계 알림이 울리면 딱 그 문장부터 떠올라. 그래서 늦을 때마다 혹시 너가 다시 물어보는 상황이 될까 봐, 내가 먼저 ‘우산 챙겼어!’를 확인하는 루틴이 생겼어.”
즉, 상대는 늦는 게 원래 습관이 아니라, 내 말 한 줄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였던 거야. 그동안 내가 기다리던 시간은 ‘지각’이 아니라 ‘확인’의 시간이었고, 상대는 그걸 숨기려고 늘 “길이 막혀서” 같은 말을 했던 거지. 나는 그 말 듣자마자 웃음이 먼저 나왔어. 아니, 너무 귀엽잖아. 그런데 동시에 좀 억울했지. 나는 기다리면서 괜히 서운해했는데, 그 기다림이 사실은 내 말이 만든 테스트(?) 같은 거였으니까.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내가 먼저 약속 당일에 “우산 챙겼어?” 같은 질문을 안 했어. 대신 “오늘 비 오면 편의점에서 우산 사자”라고 딱 잘라 말해줬고, 상대는 그제야 숨을 편하게 쉬더라.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또 늦는 날이 있었는데, 이번엔 상대가 먼저 “나 오늘 네 질문 안 했는데도 알림 뜨네? 이거 고쳐야 하나?” 하고 웃으면서 들어오더라. 결국 연애에서 서로를 닮아가는 건 맞지만, 내 말 한 줄이 상대의 시간을 흔들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어. 지각의 원인을 내가 알아낸 건 내 실수였는데, 그 실수가 또 귀여운 결말로 이어져서…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날 기다린 시간이 꽤 따뜻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