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팀장님이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
회사에서 회의 시작 10분 전에 팀장님이 늘 하시던 멘트가 있어요. “오늘은 좀 조용히 집중합시다.” 이 말이 나오면 다들 아, 진짜 오늘은 분위기 잡겠구나 싶어서 노트 펴고 화면 켜고, 에어컨 바람 소리까지 줄어드는 것 같거든요.
근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회의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팀장님이 뭔가를 삼키신 사람처럼 표정이 굳어 있었어요. 평소엔 들어오자마자 “자, 시작할게요”부터 하고, 중간중간 농담 한 방씩 던지시는데, 그날은 그냥 앉으시더니 한참을 손에 들고 있던 커피만 보고 계시더라고요.
저희는 다들 팀장님이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보다, 혹은 중요한 보고 들어오셨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제가 자료 화면 공유하려고 마우스를 움직이자, 팀장님이 아주 천천히 “네… 네” 하고는 바로 입을 다물었어요. 팀장님 특유의 설명 멘트가 끊기니까, 회의실 공기가 ‘재부팅 중’처럼 멈춰버린 느낌이었죠.
일단 저는 용기 내서 “팀장님, 오늘 KPI 정리부터 드릴까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팀장님이 눈을 깜빡깜빡 하시더니, 마치 원격으로 연결된 사람처럼 “네. 그대로… 진행… 주세요.” 이 톤이었어요. 보통이면 “좋아요, 이 부분이 핵심이니까” 같은 말이 줄줄 나와야 하는데, 문장 끝이 다 뚝뚝 끊기니까 다들 서로 눈만 봤습니다.
그때 옆자리 과장님이 분위기 살리려고 일부러 크게 웃으시며 “팀장님 요즘 뭐 드셨어요? 커피 맛이… 새로우신가요?” 하고 농담을 던졌는데, 팀장님이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만 크게 들리더니 다시 조용해졌어요. 그 조용함이 그냥 평온한 조용함이 아니라, 누가 뒤에서 ‘금지’ 버튼을 눌러버린 조용함이었습니다.
저희는 대체 무슨 일이야 싶어서, 회의 안건이 아니라 팀장님 상태부터 추측하기 시작했어요. “혹시 아침에 보고서 잘못 보내셨나?”, “아니면 상무님이 호출하셨나?”, “아니면 본인이 팀장님이 아니라 직원이었나?” 같은 말이 회의실 속에서 속삭임처럼 흘렀습니다. 근데 팀장님은 그 모든 추측에 대답 대신, 슬쩍 제 노트북 화면만 보시고 다시 고개를 내리셨죠.
그리고 잠깐 후에 해결의 실마리가 나왔습니다. 팀장님이 갑자기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시더니, 화면을 보자마자 얼굴이 아주 잠깐 굳더니… 갑자기 회의실 바닥에 “톡” 소리 나는 걸 떨어뜨리셨어요. 바로 팀장님 차키였는데요, 그게 아니라 사실은 차키가 떨어진 게 아니라 회의실 스피커 리모컨이었습니다. 아까 누가 “음량 좀 줄일까요”라고 말한 순간부터 팀장님이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다가, 그걸 깜빡 떨어뜨린 거예요.
그날 팀장님이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는 거창한 인사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리모컨을 떨어뜨리기 직전까지 팀장님이 계속 버튼을 잘못 누르셔서, 회의실 마이크가 음소거 상태였던 거죠. 그래서 팀장님은 말하고 싶어도 본인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스스로도 말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저희는 팀장님이 무슨 심각한 사건을 겪었나 했는데, 실제로는 “소리가 안 나서 텐션이 내려간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여기서 더 웃긴 게 있어요. 회의가 한참 지나서야 과장님이 “혹시 팀장님, 마이크…?”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팀장님이 그제야 리모컨을 찾아 조작하셨고 스피커가 다시 켜지면서 팀장님 목소리가 한 번에 확 퍼졌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방금… 음량을…” 하고 말하시는데, 그 한마디에 다들 동시에 빵 터졌어요. 팀장님도 잠깐 하얘졌다가 결국 “제가 말이 안 나온 줄도 몰랐네요. 다들 놀랐죠?” 하고 너털웃음 하셨고요.
그날 회의가 끝난 뒤 팀장님이 제게 커피를 하나 더 주시면서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앞으로 회의 시작할 때, 조용하다는 말은 제가 할게요. 다만 음소거는… 제가 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뒤로 우리 팀은 ‘팀장님이 조용해지면 스피커부터 본다’는 전통이 생겼고, 저희는 이제 중요한 보고보다도 리모컨 위치를 먼저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사소한 버튼 하나가 하루를 구하고, 동시에 사람 마음도 웃음으로 구해주는 날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