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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점심시간에 갑자기 회의 잡는 이유

2026-10-11 00:41:16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점심 먹고 나서 “아~ 오늘도 무사히 산다” 싶을 때, 회의실 문이 탁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딱 그 타이밍에 단톡방에 올라오는 공지 한 줄. “13시 정각 회의 잡겠습니다. 전원 참석 필수입니다.” 그리고 제 손에 들린 포크는, 아직 소스에 절반도 못 찍고 허공에서 멈춥니다.

처음엔 정말로 긴급한 건 줄 알았어요.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회사는 회사니까요. 그런데 회의 안건이요? “점심 회식/식사 관련 커뮤니케이션 점검.” 네, 점심 먹는 사람을 상대로 점심 커뮤니케이션을 점검하겠다는 그 발상. 그날 회의 시작 멘트가 “다들 맛있게 드셨죠?”로 시작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러면 지금부터 맛있게 드신 내용을 정리해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맛있게 드신 내용이 뭘까요. 저 같은 사람은 이미 위에서 회의 중입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 회의를 잡는 이유는 대개 세 가지 중 하나더라고요. 첫째, 사람들이 가장 피곤해서 반박이 약할 때. 점심 먹고 졸리면 눈이 반쯤 감기잖아요. 그 상태로 “이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을 던지면, 반대할 분이 아니라 대답할 힘이 먼저 떨어집니다. 둘째, 다들 자리를 비운 것 같아서 관리가 쉬울 때. 회의실이 텅 비어 있을 때는 누구든 앉히기 쉽거든요. 셋째, 제일 중요한 건 그냥 회의가 필요해서예요. 일정이 없으니 점심을 “시간 빌려 쓰는 공간”으로 쓰는 거죠.

특히 그날 제가 제일 이해가 안 됐던 건 회의의 진행 방식이었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보통 다들 노트나 태블릿을 켜잖아요. 그런데 우리 팀은 “식사 후 정리”를 하는 특이한 문화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각자 오늘 점심 메뉴를 말해 보세요. 그 메뉴가 왜 선택됐는지 프로세스를 설명해 주세요.” 네? 메뉴가 프로세스라고요. 저는 짜장면을 먹었는데, 제 설명이 거의 사과문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퇴근 생각을 하다가… 배고파져서… 무의식적으로…”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회의의 결론은 늘 비슷했어요. “다음부터 점심시간에도 커뮤니케이션을 더 명확히 하겠습니다.” 이 말 들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문제는 ‘명확히’가 뭔지 아무도 정의를 안 한다는 거예요. 명확히를 뭐로 측정할지 KPI가 없고, 명확히가 어느 정도면 되는지 기준도 없고, 결국 회의 끝나고 나면 점심을 먹기 전으로 시간만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미 배는 불렀고, 졸림은 두 배가 되고, 업무는 남아있죠.

그래서 저희는 점심시간 회의가 오면 나름대로 대비를 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회의용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들어가거나, 혹은 아예 “내가 지금 회의 때문에 식사가 늦어져도 괜찮은 사람인가?”를 스스로 점검해요. 어떤 분은 아예 편의점 도시락을 두고 “오늘도 점심 회의면 이거 먹을게요”라고 선언하더라고요. 그러면 팀장님이 “그건 개인 사정이고요”라고 하시는데, 그 개인 사정이 모여서 회사 운영이 돌아가는 날이 오긴 하더라고요.

물론 점심시간 회의가 전혀 쓸모가 없는 건 아닙니다. 가끔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인수인계 문서 확인이라든지, 긴급 일정 조율 같은 것. 근데 문제는 그런 날은 대개 “긴급”이라고 정확히 말해요. 그런데 우리 회사의 점심 회의는 대부분 긴급이 아니라, 긴급처럼 들리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갑자기 잡게 돼서 죄송한데요”로 시작하지만, 그 죄송함이 매주 반복되면 그건 죄송함이 아니라 주간 코스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제가 확신해요. 점심시간 회의는 회의실에서 굴러가지만, 실제로는 우리 마음속에서 굴러갑니다. 회사가 점심을 빼앗아 가는 게 아니라, 점심의 여유를 빼앗아가요. 그리고 그 여유를 빼앗긴 사람들은 오후에 집중이 안 돼서 결국 더 바쁘게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점심시간 회의의 진짜 목적은 일정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오후에 더 일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던 겁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다들 한마디씩 하죠. “다음엔 그냥 도시락을 더 빨리 먹자.” 그런데 다음 날 또 13시 정각 공지… 참, 우리 회사의 시계는 점심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게 맞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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