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때 내 이름을 자꾸 부르는 방식
신입 때 내 이름을 자꾸 부르는 방식이 있었는데, 그게 진짜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전용 호명 장치”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첫날부터 유독 누군가 제 이름을 볼 때마다 같은 톤, 같은 간격으로 꺼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아니라 제 이름이 출근하는 것 같더라고요.
입사하고 나서 교육 받는데, 팀 선배가 제 자리에 오더니 명찰을 보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어요. “너, OOO.” 딱 거기까지는 그냥 성의 있게 부르는 거겠지 싶었죠. 근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어요. 설명 듣고 노트 정리하는데도, 커피 가져오라는 말도, 보고서 어디에 체크하라는 말도 죄다 “OOO”로 시작하더라고요. 마치 제 이름이 문장 첫머리에 자동으로 붙는 단어처럼요.
처음엔 제가 뭘 잘못 들었나 싶어서 “네?” 하고 고개를 들면, 선배는 늘 똑같이 웃으면서 다시 “OOO.”만 하고 끝내는 거예요. 질문도, 설명도 없이요. 그냥… 호명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사람들이 가끔 “이름 부르면 반응 잘 오지?” 같은 농담을 하잖아요? 그게 진짜였어요. 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느낌.
그 방식이 특히 웃겼던 건, 제가 점심 먹으러 나갈 때도 그대로였다는 거예요. “OOO, 같이 가자.” 그런데 같이 가는 건 아니고, 제가 먼저 일어나면 선배는 뒤에서 “OOO” 하고 한 박자 늦게 따라오더라고요. 마치 선배의 선택지는 두 개뿐인 것처럼요. ‘OOO’라고 부르기, ‘OOO’라고 부르기. 둘 다 같은 결과인데도 끝까지 고집하는 타입.
또 회의 들어가면 더 심해요. 제가 아직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괜히 저를 지목해서 “OOO, 그거 뭐야?”라고 물어요. 그러면 제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하면, 선배가 끼어들면서 “OOO.” 하고 한 번 더 부르는 거예요. 그 한 번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제 머릿속에서 대답이 아니라 정정 버튼이 눌리는 것 같았어요. 결국 저는 “네,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게요” 같은 애매한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됐죠.
여기서 더 황당한 건,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제 이름을 동일한 방식으로 호출했다는 겁니다. 복도에서 누가 인사해도 선배는 제 옆에 붙어서 “OOO, 그거…”로 대화를 시작해요. 누가 보기엔 제가 뭘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론 저는 계속 끌려다니는 입장이었죠. 그래서 나중에는 사람들이 제 이름만 듣고 “아, 그 사람 맞다”가 아니라 “아, 호명 장치 켜졌다” 이런 표정으로 쳐다보더라고요.
그날 이후 제 멘탈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은 제가 일부러 선배 앞에서 말 수를 줄였더니, 선배가 더 크게 “OOO!”를 쓰더라고요. 마치 제가 조용해지면 장치가 오작동해서 출력 세기를 올리는 것처럼요. 심지어는 제가 화장실 다녀올 때도 “OOO, 다녀왔어?”라고 묻는 수준이었는데, 그건 거의 관심이라기보다… 감시 시스템에 가까웠습니다.
근데 웃긴 건, 이런 고생도 결국 제가 적응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는 선배가 “OOO”라고 부르기 전에 이미 제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감이 와요. 커피면 커피, 문서면 문서, 회의면 회의. 이름이 아니라 루틴을 듣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어느 날 제가 용기 내서 농담처럼 물어봤어요. “선배님, 저 이름을 너무… 자주 부르시는 것 같은데요?” 그랬더니 선배가 진지하게 말하더라고요. “너는 내가 부르면 바로 반응하잖아. 그게 제일 중요해.”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웃기면서도 좀 찡했어요. 알고 보니 선배는 제 이름을 외우기 위한 게 아니라, 제 태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굳혀둔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는 제가 스스로도 깨달았죠. 제일 효과적인 건 이름을 멋있게 바꾸는 게 아니라, 불러질 때마다 내가 제 할 일을 준비해두는 거라는 걸요. 지금도 가끔 누가 제 이름을 부르면, 그때 선배의 “OOO.”가 자동으로 배경음처럼 떠올라요. 덕분에 저는 아직도 부름을 들으면 바로 정신 차리는 사람이 됐습니다.